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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딜리아니(2). 그녀는 죽어서도 그의 모델이 되었을까?

화별마 2024. 1. 4. 08:27

모딜리아니와 잔 에뷔테른 사진

모딜리아니(2). 그녀는 죽어서도 그의 모델이 되었을까?

 

첫 전시회를 망친 모딜리아니는 겨우 쥐고 있던 마지막 이성의 손을 놓았고 결핵이 다시 그를 괴롭힌다그는 피를 토하면서도 압생트를 퍼마시며 웃었고 파리의 뒷골목을 배회하다 만취 상태에서 옷을 훌훌 벗어버리기도 했다.

 

그가 그렇게 길거리에서 나뒹굴 때면 잔 에뷔테른이 찾아와 그를 업고, 안고, 끌고 작업실로 돌아와 같이 울고, 함께 절망한다.

 

이때 모딜리아니는 그녀를 함부로 대했는데,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 뤽상부르 공원 문을 향해 던지며 자신을 가만두라며 소리치기도 했다.

 

잔 에뷔테른은 그런 모딜리아니를 안고 신과 같은 인내심으로 그의 영혼을 보듬었고 결코 모딜리아니를 포기하지 않았다.


잔은 모딜리아니에게 눈부신 재능만은 썩히지 말 것을 간청했고, 모딜리아니는 술병을 든 채로 그림을 그렸는데, 이런 광경을 본 사람들은 천사 같은 잔이 모딜리아니를 구했다고 말했다.

 

1918년 봄. 두 사람은 프랑스 남동 해안의 니스로 가는데, 거기서 모딜리아니는 재기를 꿈꿨고 돈 많은 관광객들에게 그림을 팔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쉽지 않았다.

 

그래도 모딜리아니는 따스한 니스의 햇빛 아래 건강을 점점 회복하고 있었고 임신 상태였던 잔도 비교적 기분 좋게 출산을 기다렸다.

 

그해 11월 첫딸을 얻은 모딜리아니는 오랜만에 기쁨에 빠져 한동안은 소년과 소녀 그리고 아기 그림만 그릴 정도였다.

 

니스에서 1년을 요양한 후 딸과 함께 파리로 돌아왔을 때 잔은 두 번째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고 잔의 부모가 필사적으로 말렸지만, 두 사람은 결혼 서약서를 쓴다.

 

그 사이 겨울이 찾아왔고 난로를 피울 돈조차 없었던 두 사람... 좁은 화실 안에는 서리가 내릴 정도였다잔은 어쩔 수 없이 아이와 잠시 친정으로 가는데, 그녀의 부모는 딸과 아기만 허락했고 모딜리아니는 함께 갈 수 없었다.

 

그래서 모딜리아니는 그녀와 아기가 보고 싶으면 그 집 앞에서 덜덜 떨며 몇 시간을 서성거리거나 한참을 쪼그리고 있다가 되돌아갔다.

 

1920년 되자 조금씩 사정이 좋아진 모딜리아니와 잔은 서로의 초상화를 그려주며 시간을 보낸다어느 날 모딜리아니는 잔에게 검은색의 큰 모자를 주며 모델이 되어 달라며 수줍게 요청한다.

 

모딜리아니는 이때부터 잔의 눈동자도 표현하기 시작했는데, 그림 속 자기 눈동자를 보는 잔의 눈동자에는 눈물로 가득 차 있었다.

 

차츰 모딜리아니의 그림이 제값에 팔리자, 유모에게 맡겼던 아이도 데려올 수 있다는 희망도 생겼지만, 여전히 결핵이 모딜리아니를 괴롭혔다.

 

잔이 임신 8개월 때 결국 모딜리아니가 쓰러졌고 그녀는 패닉에 빠진 상태에서 밤새 서툰 간호만 할 뿐이었다1920122, 모딜리아니는 이웃의 도움으로 파리 자선병원에 입원하지만, 전혀 가망이 없었다.

 

모딜리아니는 자신의 저주받은 생을 내려놓으려고 했고 입원 이틀 만에 결핵성 뇌막염으로 죽었는데 그의 나이 겨우 35살이었다.

 

죽은 모딜리아니의 곁을 지키는 잔의 눈은 점점 초점을 잃어갔고 이미 더는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잔의 부모는 그녀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집으로 데려와서 방에 가두었는데, 그녀는 죽어서도, 천국에 가서도 당신의 모델이 돼줄게요.’라는 말만 되뇌었다.

 

잔은 모딜리아니와 함께 한 한여름 밤과 한겨울 낮 꿈같던 3년을 회상했고 이 단꿈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잔은 5층 높이의 베란다에서 몸을 던졌고 그렇게 죽었는데, 모딜리아니가 죽은 지 하루가 지난 때였다그리고 이제 막 20살을 넘긴 그녀의 뱃속에는 모딜리아니의 아기가 있었다.

 

모딜리아니는 파리 페르 라셰즈 묘지에 묻혔고 잔 에뷔테른의 부모는 보기 싫은 모딜리아니와 멀리 떨어진 파리 교외의 바뉴 묘지에 그녀를 묻었다.

 

두 사람의 유해가 합장된 것은 두 사람이 죽은 지 10년이 지난 뒤였는데, 모딜리아니의 묘비에는 이런 글이 쓰여있었다. '이제 바로 영광을 차지하려는 순간에 죽음이 그를 데려가다.‘

 

그리고 그 옆의 잔의 묘비에는 '모든 것을 모딜리아니에게 바친 헌신적인 반려.'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