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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당의 조건, 장풍득수 그리고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

화별마 2023. 7. 21. 06:40

명당 이미지

명당의 조건, 장풍득수 그리고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

 

오래전, 땅의 지기를 이용, 왕을 만들기 위해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영화 명당을 본 적이 있다. 이 영화를 보다가 경주 교동의 최부잣집이 떠올랐다.

 

경주 교동 최부잣집은 400년 동안 9명의 진사와 12명의 만석꾼을 배출해서 경상도를 대표하는 부자... 이 최부잣집은 재산을 만 석 이상 모으지 말라, 흉년에 남의 논과 밭을 사지 말라,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6개의 가훈을 대대로 실천해 왔다..

 

그런데 이 최부잣집의 가훈에는 6개의 가훈 이외에 은밀히 전해지는 가훈이 하나 더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명당이 있으면 값의 고하를 막론하고 구해 쓰라는 것...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경주 교동에 터를 잡은 내력이나 이 집안에서 묘를 쓴 자리를 보면 길지를 애써 구했다는 소문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물론 경주의 최부잣집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부자들은 풍수와 뗄 수 없는 인연과 사연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풍수에서 말하는 부자의 조건은 무엇일까?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중환이 지은 택리지를 보면, 물은 재록(財祿)을 맡은 것이므로 큰 물가에는 부잣집과 유명한 마을이 많다. 비록 산중이라도 계곡물이 모이는 곳이라야 여러 대를 이어가며 오랫동안 살 수 있는 터가 된다‘고 기록하고 있다.

 

택리지에서 말하는 이런 조건은 조선 사대부들이 집터를 고를 때 반드시 참고했던 지침이었다. 그렇다면 왜 물은 부와 연결이 되는 걸까?

 

흔히 장풍득수(藏風得水)라는 말처럼 풍수는 바람길을 가두고 물길을 얻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런 조건을 갖춘 곳이라야 부귀나 무병장수 같은 기()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 풍수의 원리...

 

사실 오래전부터 물가는 물자의 교역과 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해왔다. 물길을 따라 길도 생기고, 사람도 모여들어서 자연스럽게 상업이 발달하기 때문... 따라서 물길은 부를 얻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기에 훨씬 유리하다.

 

이처럼 물길을 재물의 확보 수단으로 보는 생각이 아예 물 자체를 부와 묶어 같은 개념으로 정착해서 전해졌다.

 

또 풍수에서 말하는 수()는 물길 같은 외형적 요소 말고도 터에서 만들어진 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역할도 한다. 따라서 풍수의 고전인 장서(葬書)’에서는 기가 물을 만나게 되면 멈춘다(界水則止)고 적고 있다.

 

그러니까 명당이 되려면 물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 즉 터를 향해 물길이 휘감아 들어오면 기가 보호되어 재물이 쌓이고, 터에서 물길이 빠져나가는 형상이면 물길을 따라 기 또한 빠져나간다고 보는 것...

 

그리고 진정한 재물의 명당은 터의 주인뿐만 아니라 그 주변 사람에게도 넉넉한 기운을 베푸는 특징이 있어서 명당 기운이 오래 가게 마련이다. 그래서 부자나 훌륭한 가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은 그 가문의 미래를 위해서도 필요한 행위다.

 

한편, 지나친 재물의 기운이 있는 터는 사는 사람들의 건강을 해치기 쉽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부분까지 감안, 터를 조성한 부잣집이 바로 경주 교동의 최부잣집...

 

본래 최부잣집은 신라의 요석 공주가 살던 터라고 전하는데, 이 말이 사실이라면 원효대사와 요석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신라의 대문장가 설총의 태어난 곳이다.

 

이 터를 고른 최언경이라는 지관은 요석공주가 머물던 권력의 기운을 가졌고 설총 같은 대학자를 배출한 학문의 기운까지 지녔다는 이곳을 왜 선택했을까?

 

최부잣집 6개 가훈 중에 과거는 보되 진사 이상의 벼슬은 하지 말라고 경계한 것을 보면 집터의 기운을 이용해서 권력이나 학문까지 추구하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보아야 할 듯...

 

그렇다면 이 터는 재물을 원하는 목적으로 선택된 자리로 이곳에 터를 잡은 이후 내리 7명의 만석꾼을 배출한 것을 보면 분명 이곳은 재물 명당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경주 최부잣집에도 물이 재물이라는 풍수의 논리가 성립하는데, 집 앞을 흐르는 시냇물이 아닌 안채 마당에 조성해 놓은 우물... 이 우물은 물맛 좋기로 유명했고 또 이 물로 최 씨 집안 전통의 경주법주를 빚어서 최 씨 집안의 부를 유지하는 데 한몫했다.

 

그러나 명당이라고 해서 부자가 탄생하는 것은 아니고 터 주인의 인품과 베풂이 어우러져 하늘이 그것을 알고 부자를 내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