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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임금, 공부와 시험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화별마 2023. 7. 22. 08:22

조선 시대 왕 이미지

조선의 임금, 공부와 시험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태종의 맏아들 양녕대군이 세자 시절, 스승이었던 권근은 이렇게 훈계했다고 전한다. ‘세자는 과거에 급제할 필요가 말하는데 그게 아닙니다. 보통 사람은 한 가지 재주로 입신출세할 수 있지만, 임금은 배우지 않고 정치를 할 수 없으며 정치를 못 하면 나라가 곧 망합니다.’

 

조선 시대에는 세자로 책봉되기 전 임금의 맏아들인 원자(元子)와 세자를 나라의 근본, 국본(國本)’이라 불렀는데, 훗날 나라와 백성의 안녕을 책임지는 자리에 앉았기 때문...

 

따라서 왕실에서 아기가 태어나면 잘 씻은 탯줄을 태 항아리에 넣은 후, 태실(胎室)에 정중히 봉안하는 특별한 의식을 치렀다. 조선 시대에는 태를 사람의 인성을 결정하는 생명선으로 생각했으며, 태가 좋은 땅을 만나면 총명하고 학문을 좋아하며 단정하게 된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원자가 3살이 될 때까지 조기교육을 담당했던 곳은 보양청... 이곳에는 실무 보양관 10여 명이 서책과 숙직, 글씨, 심부름 등 각자 역할을 분담, 세자가 되기 전까지 갖추어야 할 덕목을 가르쳤다.

 

3살까지 원자의 교육을 보양청에서 했다면 원자가 4~6살이 되면 강학청에서 담당하는데, 이때 가장 먼저 행하는 의식이 원자(세자)와 사부(스승)의 상견례...

 

이 의식이 끝난 후 원자는 천자문유합등을 한 글자, 한 글자 습득한 뒤 스승 앞에서 외운 다음 새로운 글자를 배우는 방식으로 늘 붓과 종이를 곁에 두고 공부했다.

 

원자의 학습 교재는 유교의 기본 정신을 담은 책들로 어진 군주가 갖추어야 할, ()과 덕()을 익히는 책들... 지식의 전달이 아닌 효와 예절교육에 중점을 둔 인성교육이었다.

 

그중에서도 한나라부터 송나라까지 성현의 언행을 담은 소학은 필수과목... 그래서 15살까지는 소학을 배우고 이후에는 사서삼경을 배웠다.

 

물론 유교의 기본 덕목 중 가장 기본인 효()를 중시, 공자가 증자에게 전한 효도의 내용을 편찬한 효경도 필수과목이었고, 그 밖에 최세진의 한자 자습서인 훈몽자회와 박세무의 동몽선습’, 율곡 이이의 아동서 격몽요결등도 기본과목이었다.

 

원자는 공부하기 전에 조청 두 숟가락을 먹었는데, 흡수가 빠른 당분을 섭취해서 수업 전에 머리를 맑게 했다. 또는 조청에 절인 무인 무정과와 콩시루 떡 같은 콩 관련 주전부리를 먹거나 꿀에 잰 인삼정과와 인삼차 등이 단골 메뉴였다.

 

이렇게 공부를 한 원자가 책 한 권을 마치면 왕과 왕비를 모시고 일종의 발표회를 개최하는데, 이를 회강(會講)이라고 불렀다. 이 회강을 마치고 원자의 학습 진도가 좋으면 임금은 노고를 격려하는 의미로 스승들에게 다과상을 베풀었다고...

 

그리고 원자를 왕세자로 책봉하면 본격적으로 제왕학 공부를 하기 위해 길일을 택해 성균관에서 학생의 신분으로 배움을 청하는 의식을 거행한다.

 

왕실의 교육기관인 시강원도 있었지만, 굳이 성균관에서 입학식을 했던 까닭은 무엇일까? 그 이유는 만고의 스승 공자에게 술잔을 올리고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는 의식을 통해 왕세자 역시 학생 출신이라는 것을 만천하에 알리는 의미였다.

 

그렇게 학생이 된 왕세자가 반드시 해야 하는 공부가 바로 서연(書筵)... 서연을 담당한 관청은 세조 때에 설치한 세자시강원’...

 

교육 내용은 하루에 3번 치르는 법강(法講)과 불시에 시행하는 소대(召對) 및 야대(夜對), 그리고 한 달에 두 번 배운 내용을 복습하는 회강(會講)으로 그날 학습한 문장을 책을 덮고 외우는 배강(背講)’이 원칙이라 왕세자들은 곤욕도 당하고 죽을 맛이었다.

 

또 배강 뿐만 아니라 한 달에 2~3회씩 스승과 임금, 여러 신하 앞에서 학문의 수준을 시험받는 회강(會講)’도 왕세자들을 힘들게 했다.

 

1402(태종 2) 권근은 태종에게, 요 임금같이 덕을 이룰 때까지 학문을 그치면 안 된다고 권했는데, 요임금이 될 때까지라는 말은 죽을 때까지 공부하라는 의미...

 

지금의 학생들처럼 조선 시대의 임금도 공부와 시험지옥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어도 누구는 성군이 되고, 누구는 혼군이나 폭군이 된 것을 보면, 한 나라와 백성을 책임질 지도자는 아무나 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