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사전/역사 잡학

‘기(奇) 고(高) 박(朴)’, 수백 년간 광주 일대의 유명한 가문.

화별마 2023. 7. 18. 14:57

월봉서원 사진

 

() () ()’, 수백 년간 광주 일대의 유명한 가문.

 

전남, 광주 일대에서 알아주는 성씨(姓氏)를 손꼽을 때 하는 표현 중에 (), (), ()’이라는 말이 있다. 보통 광주 일대라고 말하면 광주를 포함해서 나주, 장성, 창평(남평, 담양, 화순, 동복)을 아우르는데, 현재도 이곳에서는 (), (), ()’ 세 성씨를 명문가로 생각한다는 것....

 

따라서 조선 시대에는 이 세 성씨보다 급이 떨어지는 집안에서 이들과 혼사를 맺으려 노력을 기울였고, 어렵게 혼사가 성공하면 주위 사람들은 ‘택(턱)걸이 혼사라고 부르며 부러워했다고...

 

이렇게 수백 년간 명문가로 인정을 받아 온 (), (), ()’ 집안은 그야말로 선망의 대상이었다. 이렇게 조선 시대에 어느 집안이 명문으로 부상하려면 뛰어난 인물이 한 명쯤 배출되어야만 한다.

 

당시는 학문이 높으며, 의리를 지키고, 인품이 훌륭하다는 3가지 조건을 가진 인물이 등장하면 그 집안은 주변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명문가로 대접받았는데, 그런 인물은 그 집안의 중시조가 되기 마련이다. ‘(), (), ()’ 세 성씨는 바로 이런 인물들을 배출했다.

 

광주 일대에서 기 씨 집안이 명문가로 떠오르게 된 것은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이라는 인물이 있었기 때문이고, 고 씨 집안은 임진왜란 때 금산전투에서 삼부자가 함께 전사한 의병장 제봉(霽峯) 고경명(高敬命)을 배출했다.

 

박씨 집안에서는 문장과 학행으로 이름을 날린 눌재(訥齋) 박상(朴祥)과 그의 동생인 육봉(六峯) 박우(朴祐), 그리고 육봉의 아들로 문인이자 영의정을 지낸 사암(思庵) 박순(朴淳)을 배출했기 때문이다.

 

(), (), ()’이라고 해서 기 씨를 제일 앞쪽에 세우는 이유는 이 지역 사람들이 고봉 기대승이라는 인물을 그만큼 높이 평가한다는 의미다.

 

아울러 광주 일대를 가리키는 광(), (), (), ()이라는 표현도, 본래는 나주가 제일 큰 동네라 나, , , 창으로 불렸지만, 광주에서 고봉을 배출해서 광주를 앞에 둔다고 고봉(高峰) 후손들은 주장한다.

 

만약 그 주장이 사실이라면 고봉(高峰)이라는 인물이 이 지역에 끼친 영향력은 엄청 대단했던 셈이다. 이렇게 기씨가 명문가로 자리 잡게 된 배경에는 고봉(高峰)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