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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인간 욕망과 권력의 절대적 아이콘.

화별마 2023. 11. 1. 13:53

골드 이미지

, 인간 욕망과 권력의 절대적 아이콘.

 

문명이 시작된 이래 인간은 금에 열광하지 않은 적은 없었고 특히 권력은 금을 사랑했는데, 성경에 등장하는 고대 이스라엘 왕국의 왕 솔로몬은 지혜의 왕이기도 했지만, 황금의 왕이기도 했다.

 

기록에 의하면 솔로몬은 길이 41m, 너비 10m, 높이 15m의 성전을 세우고 성전의 벽을 모두 금으로 치장됐다. 또 솔로몬은 금으로 만든 방패를 사용했고 금으로 만든 잔에 포도주를 부어 마셨다.

 

그리고 비잔틴 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는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약 13의 금을 사용해서 성 소피아 성당을 지었다.

 

사실 15세기 유럽인들의 대항해 시대를 열게 한 것도 금의 힘이었는데, 14928,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4개월의 항해 끝에 오늘날의 바하마 제도에 도착했다.

 

콜럼버스는 죽을 때까지 자신이 도착한 땅을 스페인 사람들이 시팡구라고 불렀던 땅이라고 확신했다. 시팡구는 마르코 폴로가 자신의 여행기에서 금으로 뒤덮여 있다고 묘사한 땅...

 

이렇게 금에 대한 유럽인들의 욕망은 한 제국을 송두리째 붕괴시켰는데, 스페인의 군인 피사로는 1533200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잉카 제국을 공격했다.

 

공격의 명분은 기독교 전파였지만, 생포된 잉카 제국의 황제 아타후알파는 스페인인들이 개종보다는 금에 더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자신의 몸값으로 머물던 거처를 가득 채울 정도로 금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그러나 황제는 약속을 지켰지만 결국 교수형을 당했고 유럽인들이 신대륙의 금을 열성적으로 탐한 덕분에 1700년대 세계 귀금속 총량은 1492년에 비해 5배로 증가했다.

 

이렇게 금은 오랫동안 권력과 부의 원천이자 상징이었다. 이집트 카이로 고고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고대 이집트 투탕카멘 왕의 황금 마스크를 보더라도 고대 이집트에서는 오로지 파라오만이 금을 사용할 수 있었다.

 

16세기 영국의 정치인 토머스 모어는 1516년 자신이 쓴 유토피아라는 책에서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섬 유토피아에 사는 사람들은 부자가 되는 일에 관심이 없다고 적고 있다.

 

유토피아는 그리스어로 존재하지 않는 땅이라는 뜻으로, 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에서 당시 영국 사회의 물질주의를 풍자했던 것...

 

그 후 15세기 말과 16세기에 유럽에 불어닥친 금 열풍이 범선을 타고 이루어졌다면, 19세기 미국의 골드러시는 증기선과 기차를 타고 불어온다.

 

18481월 캘리포니아에서 어느 제재업자가 소유한 땅의 개울에서 사금을 발견하자 같은 해 5, 인근 샌프란시스코의 학교가 문을 닫고 학생과 교사가 함께 금을 찾으러 떠난다.

 

이듬해부터 본격적인 열기가 타올르며 1853년까지 일확천금을 꿈꾸는 10만여 명이 캘리포니아로 몰려들었다.

 

금의 마력은 동서양을 가리지 않았다. 1930년대 식민지 시절 조선에도 골드러시가 있었는데, 1930년대 조선은 황금광 시대였다.

 

19348월에 발행된 잡지 삼천리에는 수삼 년 내로 금광열이 부쩍 늘기도 하였거니와 금광 때문에 졸부가 된 사람도 훨씬 많아졌다. 그래서 웬간한 양복쟁이로 금광꾼 아닌 사람이 별로 없고, 또 예전에는 금전꾼이라 하면 미친놈으로 알았으나 지금은 금광 아니하는 사람을 미친놈으로 부르리만치 되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1930년대 조선의 금광 열풍 배후에는 일본 군부의 산금 정책이 있었다. 당시 일본은 군국화 과정에서 금이 부족했다.

 

세계 경제가 금본위제이던 당시 금이 없다는 것은 곧 국가 파산을 의미했기에 조선총독부는 대대적인 산금 정책을 세우고 돈을 풀어 금광에 보조금을 지급했다. 물론 생산된 금을 고가에 매입했다.

 

이런 금의 광채 뒤에는 노동 착취의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노예 노동력을 활용했고 대항해 시대 유럽인들은 남아메리카의 금을 캐기 위해 아프리카 흑인들을 범선에 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