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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벨스, 잘못된 신념이 나라 망친다 (1)

화별마 2023. 7. 15. 06:35

괴벨스 사진

괴벨스, 잘못된 신념이 나라 망친다 (1)

 

선전과 선동의 달인이었던 나치 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가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누구든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거나, ‘100%의 거짓말보다는 99%의 거짓말과 1%의 진실의 배합이 더 나은 효과를 보여준다.’

 

그리고 선동은 문장 한 줄로도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반박하려고 할 때면 사람들은 이미 선동당해 있다.’라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읽는 순간 감탄이 나올 만큼 선전과 선동의 핵심을 알려주는 명언(?)이지만, 실제 괴벨스가 이런 말을 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요제프 괴벨스의 아버지 프리츠 괴벨스는 전형적인 독일인으로 공장 급사를 시작으로 근면과 성실함을 무기로 사무원과 경리를 거쳐 공장 지배인이 된 인물...

 

이런 가정환경은 괴벨스의 성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신앙심과 충성심, 애국심, 의무감이 왜곡되어 나중에 히틀러에 대한 맹종으로 변한다.

 

또 하나 괴벨스에게 영향을 준 것은 신체적 콤플렉스... 네 살 무렵 괴벨스는 골수염에 걸려 다리에 장애가 생겼고, 이런 신체적 결함으로 어린 시절부터 주위로부터 동정과 놀림을 받으며 자랐다.

 

어린 괴벨스는 이런 열등감을 공부로 극복했는데, 그는 반에서 성적이 가장 우수한 학생이었고, 하층 계급 출신 괴벨스의 부모는 넉넉지 못한 살림에도 괴벨스의 공부를 열심히 지원했다.

 

그리고 괴벨스는 연극에도 열심이었다. 어린 나이에도 효과적인 대사와 동작, 몸짓을 구사할 줄 알았고, 늘 자신이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 의식하면서 행동했다.

 

괴벨스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제1차 세계대전이 터졌다. 괴벨스의 선배와 친구들은 전선으로 달려갔지만, 애국자 괴벨스는 다리 장애로 다시 한번 좌절하게 된다.

 

괴벨스는 본 대학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공부할 때 부유한 집안의 안카 슈탈헤름을 만나 사랑에 빠졌지만 결국 헤어진다. 그는 이때부터 돈이 제일인 더러운 세상에 대한 분노로 사회주의를 공부한다.

 

192111월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옛 애인 안카의 도움으로 겨우 드레스덴은행에 취직하지만 8개월 후 해고된다. 이후 그는 금융자본주의와 이를 배후에서 조종하는 유대인들을 증오하기 시작한다.

 

그런 괴벨스 앞에 아돌프 히틀러가 나타난다. 192311월 히틀러는 나치당을 동원, 바이에른 주정부 요인들이 회동하고 있던 뮌헨의 뷔르거브로이 맥주 홀을 점거, 새 정부 수립을 선포했지만, 이틀 만에 진압된 것...

 

히틀러는 5년 형을 선고받고 란츠베르크 요새에 수감되지만, 많은 독일인은 혜성처럼 나타난 이 애국자에게 열광했다. 괴벨스도 그들 중 한 사람이었다.

 

히틀러에게 끌린 괴벨스는 결국, 히틀러와 운명을 같이한다. 192412월 석방된 히틀러가 나치당 재건에 나서자 괴벨스는 이듬해 북독일나치당에 입당한 것...

 

192511월 브라운슈바이크에서 괴벨스는 히틀러와 만난다. 괴벨스는 이 남자는 왕이 되는데 필요한 덕목을 남김없이 갖추었다. 타고난 호민관이며, 떠오르는 독재자라고 회상했다.

 

192610월 히틀러는 괴벨스를 베를린대관구관구장으로 임명하는데, 사실 나치당에 베를린은 험지였다. 독일은 지역갈등이 심한 나라로 바이에른에서 태동한 나치당은 베를린에서는 인기가 없었다.

 

하지만 괴벨스는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중의 눈에 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취임한 직후인 1114일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준군사조직인 나치돌격대를 동원, 노이쾰른 지역에서 정치 시위를 벌인 것...

 

괴벨스는 제일 먼저 선전과 선동 요원의 양성에 힘써서 노이쾰른 사건 이틀 후에 베를린대관구 부설 웅변학교를 만든다.

 
2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