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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리아 전쟁, 병력이 많다고 반드시 이기는 것은 아니다.

화별마 2023. 9. 21. 16:44

갈리아 전쟁 이미지

갈리아 전쟁, 병력이 많다고 반드시 이기는 것은 아니다.

 

갈리아 전쟁은 기원전 58년에 시작해서 기원전 51년에 끝난 로마 공화정과 갈리아 부족 간의 전쟁이다.

 

기원전 58년 카이사르는 갈리아 키살피나와 일리리아, 프로빈키아의 총독으로 임명되었는데, 당시 갈리아의 독립 켈트족 부족 국가들과 교역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었다.

 

당시 헬베티 족은 대서양 연안의 산토니 족의 영토로 이주하기 위해 프로빈키아 속주를 지나게 해달라고 카이사르에게 요청했으나 거절당하자 하이두이 족과 세콰니 족의 영토로 강제 통과하려고 하자 하이두이 족이 카이사르에게 도움을 요청,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 이야기를 읽다 보면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을 기술한 부분에 다음 같은 흥미로운 내용이 나온다.

 

병력이 많을수록 좋다고 할 수 없다. 카이사르는 적보다 열세인 병력으로 싸우는 것이 반드시 불리하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우선 병사들의 수가 적으면 군량을 확보하는 문제도 그만큼 줄어든다.’

 

전쟁할 때 병력이 많으면 유리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병력이 많다고 해서 전쟁에서 반드시 이긴다는 보장은 없다는 것... 왜냐하면, 전쟁은 단순한 산술 계산이 아니기 때문인데, 카이사르는 그것을 갈리아 전쟁에서 입증했다.

 

기원전 54920일 현재 프랑스 중부지역인 알레시아에서 갈리아와 맞붙은 로마군은 채 5만 명이 되지 않았다.

 

알레시아 성채에는 8만 명의 갈리아 군이 있었고, 이 성채를 둘러싼 로마군을 다시 25만 명의 갈리아 군대가 에워쌌다.

 

로마군의 앞과 뒤에는 모두 34만 명의 대군이 있었지만 이 전쟁에서 카이사르의 로마군이 승리한다.

 

갈리아 전쟁은 무려 7년여에 걸친 대장정이었는데, 카이사르는 서두르지 않고 일 년에 한가지씩 목표를 완수해서 전쟁에서 승리한다.

 

갈리아 전쟁이 끝나자 카이사르는 갈리아 전쟁기를 펴냈다. 당시 속주의 총독은 임기 중에 모든 사건을 원로원에 보고해야 했기 때문이다.

 

카이사르의 최대 정적이었던 폼페이우스도 원로원에 보고서를 보냈지만, 그는 그것이 전부였고 카이사르는 책으로 펴내 일반 시민들이 읽도록 했다.

 

카이사르가 책을 펴낸 것에 대해 시오노 나나미는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를 비롯한 동시대인들과 달리 원로원보다는 일반 시민들의 지지에 모든 것을 걸었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그 후 기원전 4889일 원로원의 지지를 얻었던 폼페이우스와 일반 시민의 마음을 샀던 카이사르가 그리스에서 싸우게 된다.

 

파르살로스 평원에서 벌어진 이 전투에서 폼페이우스의 군대는 47,000명이었고 기병이 7,000기였다. 반면 카이사르의 군대는 22,000명이었고 기병은 1,000기였다.

 

이 전투에서 누가 승리했을까? 원로원이 아닌 일반 시민들의 지지를 받았던 카이사르가 두 배 정도 숫자가 많은 폼페이우스 군을 물리치고 승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