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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미몽덴, 19세기 파리 사회의 독특했던 직업의 여성.

화별마 2023. 9. 19. 09:54

마리 뒤플레시 이미지

드미몽덴, 19세기 파리 사회의 독특했던 직업의 여성.

 

19세기 프랑스 파리 사회를 들여다보면 드미몽덴(Demi-Mondaine)’이라고 부르던 독특한 직업의 여성을 발견할 수 있다.

 

드미몽덴() 사교계 여자’, 즉 고급 매춘부를 의미하는데,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자신의 생활 전반을 예술의 경지까지 끌어올린 여성...

 

따라서 드미몽덴 중에는 배우인 경우도 있었고 무대에서 자신을 최고로 빛나게 하기 위해 왕후나 귀족, 부르주아 계급에게 도움을 받아 생활했다.

 

특히 인기 있는 드미몽덴은 자신을 지지하고 열렬히 응원하는, 요즘의 아이돌 팬클럽같이 도움과 지원을 받기도 했다.

 

그런 드미몽덴 중에 청순함으로 널리 알려진 여자가 있었는데, 알렉상드르 뒤마피스가 1848년에 발표한 연애 소설 춘희의 모델이었던 마리 뒤플레시...

 

뒤플레시는 목사가 첩에게서 얻은 자식으로 1824115일 노르망디에서 태어났는데, 본명은 알퐁신 로즈 플레시... 비록 뒤플레시의 어머니는 첩이었지만 몰락한 명문가 출신으로 아름다운 외모를 배경으로 15살 때부터 매춘을 했다고 전한다.

 

19살이 된 뒤플레시는 파리의 고급 주택가 몽타보르가 28번지의 호화로운 저택에서 오전 11시쯤 일어나 아침 식사를 하고 신문을 읽고 피아노를 연습했는데, 당시 그를 가르친 사람 중에는 일류 피아니스트 프란츠 리스트도 있었다고...

 

뒤플레시는 20살쯤 되었을 때 아버지뻘 되는 슈탁켈베르크 남작과 사귀면서 남작의 연인인 동시에 어린 나이에 사망한 남작의 친딸 역할도 해야 했다

 

그런 뒤플레시의 운명에 전환기가 찾아오는데, 페레고 백작과 파리 오페라극장의 가면무도회에서 우연히 만나 그의 프러포즈를 받고 사랑하는 관계가 된 것...

 

사실 뒤플레시는 페레고 백작을 사모하고 있었으나, 드미몽덴에게는 사랑하는 남자가 있어도 절대로 자기가 먼저 사랑을 고백해서는 안 된다는 규칙이 있었기 때문에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이런 드미몽덴의 세계에서는 남자가 여자를 얼마나 사랑하는 가는 남자가 건네는 돈에 의해 그 크기가 결정되곤 했다하지만 뒤플레시는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페레고 백작에게 그런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페레고 백작도 사랑하는 뒤플레시를 위해 아내와 정식으로 이혼하고 다른 연인들과의 관계도 정리한 후 결혼하지만, 이 결혼은 불행의 시작이 된다.

 

당시 페레고 백작의 아버지는 은행가... 따라서 백작은 파리의 사교계에서도 대단한 부자로 이름이 알려졌지만, 오랜 방탕 생활과 막대한 이혼 비용까지 부담하는 바람에 막대한 빚만 남은 상태였다.

 

따라서 뒤플레시는 백작 부인이라는 호칭을 얻은 대신 빚에 허덕이며 생활해야 하는 신세로 전락한다.

 

그 무렵 생활고 탓이기도 하지만 그녀는 앓아왔던 결핵으로 주로 침대에 누워 지냈는데, 그런 모습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채권자들은 돈이 될 만한 것을 그녀의 방에서 들고나갔다..

 

사람들이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18471월 말... 팔레 루아얄 극장에 나타난 그녀는 창백한 얼굴로 하얀색 동백꽃으로 만든 커다란 꽃다발을 품에 안고 있었다.

 

결국, 그녀는 결핵성 고열로 사경을 헤매다 죽음을 맞이했는데, 하얀 동백꽃을 품에 안고 나타난 후 며칠이 지난 23... 그녀의 나이 23살이었다.

 

뒤플레시가 세상을 떠나자 연인이자 아버지 같았던 슈탁켈베르크 남작이 그녀의 장례식을 치러주었다.

 

그리고 그녀가 남긴 유품은 모두 경매 처분되었는데, 그녀가 무척 아끼고 귀여워한 애완 잉꼬까지 비싼 가격에 팔렸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