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奇) 고(高) 박(朴)’, 수백 년간 광주 일대의 유명한 가문.
전남, 광주 일대에서 알아주는 성씨(姓氏)를 손꼽을 때 하는 표현 중에 ‘기(奇), 고(高), 박(朴)’이라는 말이 있다. 보통 광주 일대라고 말하면 광주를 포함해서 나주, 장성, 창평(남평, 담양, 화순, 동복)을 아우르는데, 현재도 이곳에서는 ‘기(奇), 고(高), 박(朴)’ 세 성씨를 명문가로 생각한다는 것....
따라서 조선 시대에는 이 세 성씨보다 급이 떨어지는 집안에서 이들과 혼사를 맺으려 노력을 기울였고, 어렵게 혼사가 성공하면 주위 사람들은 ‘택(턱)걸이 혼사’라고 부르며 부러워했다고...
이렇게 수백 년간 명문가로 인정을 받아 온 ‘기(奇), 고(高), 박(朴)’ 집안은 그야말로 선망의 대상이었다. 이렇게 조선 시대에 어느 집안이 명문으로 부상하려면 뛰어난 인물이 한 명쯤 배출되어야만 한다.
당시는 학문이 높으며, 의리를 지키고, 인품이 훌륭하다는 3가지 조건을 가진 인물이 등장하면 그 집안은 주변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명문가로 대접받았는데, 그런 인물은 그 집안의 중시조가 되기 마련이다. ‘기(奇), 고(高), 박(朴)’ 세 성씨는 바로 이런 인물들을 배출했다.
광주 일대에서 기 씨 집안이 명문가로 떠오르게 된 것은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이라는 인물이 있었기 때문이고, 고 씨 집안은 임진왜란 때 금산전투에서 삼부자가 함께 전사한 의병장 제봉(霽峯) 고경명(高敬命)을 배출했다.
박씨 집안에서는 문장과 학행으로 이름을 날린 눌재(訥齋) 박상(朴祥)과 그의 동생인 육봉(六峯) 박우(朴祐), 그리고 육봉의 아들로 문인이자 영의정을 지낸 사암(思庵) 박순(朴淳)을 배출했기 때문이다.
또 ‘기(奇), 고(高), 박(朴)’이라고 해서 기 씨를 제일 앞쪽에 세우는 이유는 이 지역 사람들이 고봉 기대승이라는 인물을 그만큼 높이 평가한다는 의미다.
아울러 광주 일대를 가리키는 광(주), 나(주), 장(성), 창(평)이라는 표현도, 본래는 나주가 제일 큰 동네라 나, 광, 장, 창으로 불렸지만, 광주에서 고봉을 배출해서 광주를 앞에 둔다고 고봉(高峰) 후손들은 주장한다.
만약 그 주장이 사실이라면 고봉(高峰)이라는 인물이 이 지역에 끼친 영향력은 엄청 대단했던 셈이다. 이렇게 기씨가 명문가로 자리 잡게 된 배경에는 고봉(高峰)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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