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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유보트, 금수저로 태어나 재능을 늦게 인정받은 화가.

화별마 2023. 8. 5. 14:34

화가 카유보트 이미지

카유보트, 금수저로 태어나 재능을 늦게 인정받은 화가.

 

사업 수완이 좋았던 판사 아버지는 1841년 초반, 섬유회사 지분을 45,000프랑에 매입, 기업을 수백 배 규모로 키웠다.

 

그리고 그 이익으로 국채와 주식, 부동산을 매입했고 호텔도 지었다. 이렇게 축적한 자산이 2,000만 프랑... 지금 시세로 최대 5,000억 원에 이르는 막대한 돈이었다.

 

그런 아버지를 둔 덕분에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으며 아버지처럼 법학을 공부한 카유보트는 1870년 변호사 개업 면허를 땄다. 하지만 그는 변호사로 푼돈을 벌 생각이 없었다.

 

대신 카유보트는 이상한 그림을 그리는 거지 모습의 화가들과 어울리며 그들에게 용돈을 주고 그림을 사 주는 괴짜 금수저였다. 덕분에 그 화가들은 훗날 인상파 거장이라고 불리게 된다.

 

또 카유보트는 평생 놀고먹을 만큼 재산이 있으면서도 당장 작품을 팔아야 밥을 먹을 수 있는 사람처럼 그림을 그렸다. 특히 그는 비가 오는 풍경을 잘 그렸다.

 

1873년 그가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에 입학한 것도 대단한 뜻이 있었던 것이 아닌 어린 시절 미술을 좋아했고 재능도 있으니, 한번 배워 볼까 하는 정도...

 

당시 파리에는 금수저들이 꽤 있었는데, 기술과 자본주의의 발달, 식민지 개척 등의 흐름을 타고 엄청난 부를 얻은 가문 출신들이었다. 이들의 삶은 풍족했지만 지루했다.

 

따라서 그 시절의 즐거움은 밥 먹고 수다 떠는 것 외에는 없었다. 그런 금수저 젊은이들의 삶은 한마디로 지루함과 싸움이었다.

 

그러나 그가 미술학교에서 만난 사람들은 달랐다. 그곳에는 르누아르, 모네, 마네, 드가와 같은 화가들이 있었다. 그들은 가난했고 행실도 불량했지만, 이들에게는 맨주먹으로 세상을 헤쳐나가는 특유의 에너지가 넘쳤다.

 

이때부터 카유보트는 인상파 화가들과 어울리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사실 그의 화풍은 사실적이라 인상파와는 조금 달랐다.

 

당시 인상파는 그림 같지 않은 그림을 그린다는 혹평을 받던 시절이라 카유보트 입장에서는 정통적인 살롱에 작품을 내놓는 것이 자신의 화가 커리어에 더 유리했다.

 

하지만 그는 살롱보다 파리 길거리의 인상파 전시장이 더 마음에 들었고 1876년 열린 인상파의 두 번째 전시회에 공식적인 참여 작가로 초청받은 것은 인상파 전시에 적잖은 비용을 제공했기 때문이었다.

 

1874년 아버지와 1876년 큰 동생, 1878년 어머니가 죽자 그는 더욱 그림에 몰입했다. 딱 한 명 남은 막냇동생을 제외하면, 그를 세상과 묶어줄 것은 미술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1886년 제8회 인상파 전시까지 꾸준히 출품하면서 르누아르를 비롯한 화가들의 그림을 사 주고 용돈까지 따로 챙겨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상파 화가들에게 카유보트는 좋은 친구이자 후원자였지만 마음을 털어놓고 현실적인 고민을 의논하기엔 다소 부담스럽고 계급이 다른 존재였다.

 

점차 카유보트도 그림에 흥미를 잃었다. 그리고 막냇동생과 함께 우표를 수집하거나 보트를 타고, 직접 보트를 설계하기도 했다.

 

그들은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냈는데, 그들의 우표 컬렉션은 영국 최고의 우표 수집가에게 팔려 지금 대영박물관에 전시돼 있고, 카유보트가 설계한 보트 구조 중에서는 지금까지도 사용하는 것이 있을 정도...

 

하지만 1887년 막냇동생이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며 그의 곁을 떠나갔다. 홀로 남은 카유보트는 모든 것이 허무해져 지겨운 파리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파리 북서부의 작은 마을에 자리를 잡은 그는 정원을 가꾸며 살며 친한 인상파 화가들과도 계속 교류했고 생활비도 챙겨줬지만, 그림을 모으는 일은 그만두었다.

 

물론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하층민 출신의 여인과 살았다. 그러다가 뇌졸중으로 45살의 젊은 나이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다.

 

평생을 물려받은 재산에 가려 노력과 재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화가 카유보트... 유언에 따라 그의 인상파 컬렉션은 루브르박물관에 기부된다.

 

그렇게 인상파 화가들의 좋은 후원자로만 기억되던 화가 카유보트는 1960년대부터 화가로서 역량을 평가받는다. 지금은 1919세기말 파리의 모습과 비 오는 풍경을 가장 아름답게 그린 화가로 다시 조명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