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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 그는 러시아계 유대인으로 코미디언이었다.

화별마 2023. 7. 20. 11:47

젤렌스키 사진

 

젤렌스키, 그는 러시아계 유대인으로 코미디언이었다.

 

1978,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의 유대인 학자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증조부는 홀로코스트 희생자였으며 아버지는 컴퓨터공학 교수, 어머니도 공학자였다.

 

아버지가 몽골에서 근무, 몽골에서 살다가 어머니의 건강 문제로 4년 만에 우크라이나로 돌아온 그는, 어려서부터 밝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누군가를 웃기는 재주가 뛰어났다고...

 

10대 때는 운동도 좋아해서 역도와 레슬링을 배운 그는, 예능에도 소질을 보여 춤도 잘 추고 학교 앙상블에서 기타리스트로도 활동했다.

 

그러다가 고등학생 때부터 TV 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한 그는, 1997년 코미디 경연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코미디언으로 주목을 받는다.

 

19살이 되던 해 크바르탈 95’라는 연예 기획사를 설립한 그는, 자신이 주연을 맡은 사회 풍자 드라마와 영화를 여러 편 제작하기도 했다.

 

그 후 젤렌스키는 사업과 공부를 병행하면서 우크라이나의 명문 대학인 키이우 국립경제대학에서 경제학 학사와 법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2006년에는 댄스 경연 대회에 나가 우승까지 차지한다.

 

그의 삶은 2015년부터 방영되었던 국민의 종이라는 51부작 대하드라마가 바꾸어 놓았는데, 이 드라마는 부패한 우크라이나 사회를 풍자적으로 비판한 드라마...

 

이 드라마의 제작자이자 주연을 맡았던 젤렌스키는 이 드라마 속에서 고등학교 역사 교사로 등장, 학생들 앞에서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를 비판하는데 이런 장면을 학생들이 온라인에 올리는 바람에 역사 교사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큰 인기를 얻어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된 후, 부패 정치인들을 몰아낸다는 것이 이 드라마 줄거리,,,

 

이 드라마가 국민의 절반에 가까운 2,000만 명이 시청하며 선풍적 인기를 끌자, 2018년 그는 국민의 종출연진과 함께 같은 이름의 정당을 창당, 대권 주자로 부상한다.

 

그는 기존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이 높았던 우크라이나에서 현직 대통령을 3배 가까운 차이로 꺾으며 대통령에 당선되어 TV 드라마가 현실로 탄생한다.

 

2019, 41세로 최연소 대통령이 된 그는, 취임 연설에서 나는 평생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모든 것을 다해 왔다. 그것이 나의 사명이었다. 이제 나는 우크라이나인들이 최소한 울지 않도록 모든 것을 다할 것이다라고 자신의 희망을 밝히기도 했다.

 

젤렌스키는 정치적 기반이 취약한 온건 중도파로 친서방파와 친러파로 양분된 우크라이나 정치 구도에서 러시아계 유대인이라는 가문의 문제로 양쪽에 모두 포위를 당한 처지였지만, 그는 정파 문제에 연연하지 않고 안보와 외교에 집중한다.

 

그러나 취임 후, 첫 정상회담을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다음은 독일의 메르켈 총리와 가지면서 적극적인 친서방 행보로 러시아의 푸틴과는 앙숙이 된다.

 

러시아가 18만 대군을 동원,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자 그는 서방에 도움을 요청하며, 유럽 안보 구조의 재구축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또 그는, 우방국들의 지지가 있든 없든 우리는 조국을 지킬 것이라며 무기 지원에 감사하지만, 이는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 합병 이후 8년간 유럽의 안보를 위해 방패 역할을 해온 기여에 대한 대가이지 구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역에 미사일 폭격을 하며 침공하자 그는 18세부터 60세까지 국민 총동원령을 내리고, EU 정상 회의에서 5분간 영상 연설을 통해 오늘 제가 살아있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지 않으면 내일 전쟁은 당신들의 문을 두드릴 것이라며 서방 국가의 지도자들에게 경고했는데, 그의 호소와 경고는 효력을 발휘해서 서방측은 즉각 러시아에 대한 제재와 함께 우크라이나에 대한 각종 지원이 시작된다.

 

그는 하루에 3시간 정도만 자면서 강인하고도 치밀한 모습으로 전쟁을 진두지휘하고 있는데, 개전 직후 사흘 이내에 함락될 것이라 에상되었던 키이우는 최고 통수권자를 중심으로 뭉쳐 열흘이 지나도록 함락되지 않았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뉴욕타임스는 코미디언 출신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옛 동료들을 중용해서 측근 정치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코미디언으로 채워진 우크라이나 정부는 많은 실책을 범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또 전문가가 없는 정부, 외교관 없는 외교부, 장군 없는 군 지휘부가 언제 붕괴할지 모른다며 아마추어 정치가가 우크라이나를 망치고 있다고 했지만, 그의 결연한 행동을 본 외국 언론들은 찰리 채플린이 처칠로 변모했다고 격찬했다.

 

러시아의 침공 후, 미국은 암살 위협을 받는 그를 보호하고자 망명을 제안했지만. 그는 여기가 내 싸움터다. 나는 도피용 비행기가 아닌 탄약이 필요하다며 거절했다.

 

러시아군이 수도 키이우의 코앞까지 쳐들어왔어도 수도를 지킨 그의 의연한 모습은 싸움의 흐름을 바꾼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