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사전/인간 잡학

오스카 와일드, 그의 말년 동반자는 담배와 맥주였다.

화별마 2023. 7. 22. 12:18

오스카 와일드 사진

오스카 와일드, 그의 말년 동반자는 담배와 맥주였다.

 

아일랜드 출신으로 빅토리아 시대에 가장 성공한 극작가로 뽑히는 오스카 와일드는 뛰어난 글솜씨와 183cm에 달하는 키, 준수한 외모를 가진 엄친아로 자신감에 가득 찬 문학가의 전형 같은 인물이다.

 

그의 아버지는 여왕의 주치의였을 만큼 부유한 안과의사였고, 어머니는 성공한 작가이자 아일랜드 민족주의자였다. 그래서 자신을 남과 다른 특별한 존재라는 엄청난 자부심이 있었고, 자신에게 '평범'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했을 정도라고...

 

인생에는 2가지 비극이 있다. 첫째는 우리가 바라는 것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둘째는 우리가 바라는 것을 얻는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긴 오스카 와일드는 말년이 불행했는데, 그 이유는 영국 역사상 처음으로 동성애자라는 죄목으로 2년여 동안 수감생활을 하며 중노동을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부와 명성을 모두 갖고 잘 나가던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퀸즈베리 사건'으로 몰락한다. 와일드는 결혼해서 자식도 두 명 두었지만, 동성애자로 거리에서 소년에게 돈을 주고 매춘을 하다가 교도소에 가게 된 것...

 

수감 중인 그에게 허락된 것은 몇 개비의 담배와 약간의 맥주... 결국, 담배와 맥주가 잘 나가던 오스카 와일드 말년의 동반자였던 셈...

 

레딩 교도소에서 나온 그는 바로 프랑스로 건너가 아내가 보내주는 1주당 3파운드의 돈과 간단한 일을 해서 생활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돈은 술을 사는 데 사용하였고, 정신적으로도 매우 피폐해져 폐인 같이 살았다.

 

그는 치통에 시달렸지만, 치과에 갈 돈이 없어 구걸하며 간신히 연명했는데, 어느 날 런던에서 알고 지냈던 오페라 여가수를 길에서 만나 나는 오스카 와일드요. 지금부터 지독히도 끔찍한 이야기를 할 테니 잘 들어보오. 그리고 돈 좀 주시오라고 할 정도였다고...

 

프랑스에서 죽은 와일드는 프랑스 파리 20구의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에 안장이 되어있는데, 1999년 누군가가 묘비에 립스틱 자국을 남기며, 한때 묘비 키스가 크게 유행하기도 했다.

 

와일드의 기구한 말년 동반자였던 맥주...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만든 수메르인은 인류 최초 서사시인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맥주를 문명의 상징으로 표현했다.

 

엔키두는 음식 먹는 것을 몰랐네. 맥주 마시는 법도 몰랐네.’ 여인 엔키두는 문명을 모르는 야만인이었는데 맥주를 마실 줄 알아야 문명인이라는 의미였다.

 

로마제국에서 말 오줌처럼 누렇고 포도주에 비해 싱겁다고 폄하된 맥주는 쉽고 빠른 제조 과정과 시원함 그리고 상큼함으로 배고픈 사람에겐 마시는 빵으로, 전쟁터 병사에겐 용기를 북돋우는 음료로 각광받았다..

 

맥주는 8세기 신성로마제국의 카를로스 황제가 가톨릭 수도원에 양조장을 건설하게 하면서 유럽으로 퍼져나갔고, 홉을 첨가하면서 상하지 않고 오래 보관할 수 있게 됐다.

 

이어 북유럽을 중심으로 한 한자동맹이 맥주 대중화에 일조했는데, 이때 라거 맥주가 탄생했다. 낮은 온도에서 서서히 발효시킨 에일 맥주가 대세이던 시절, 고온에서 발효시켜 효모를 모두 죽인 후 걸러낸 투명한 맥주가 등장한 것... 최초의 라거 맥주는 필스너 우르켈이었다.

 

맥주 한 잔을 위해서라면 명예를 버려도 좋다고 한 셰익스피어, 맥주 양조사와 결혼한 마르틴 루터, 상대성이론을 발견한 날 맥주를 먹고 쓰러진 아인슈타인 등 맥주는 많은 유명 인사들의 사랑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