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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갈, 고대 유럽에서도 만들어 먹었다.

화별마 2023. 9. 15. 11:19

가룸 이미지

젓갈, 고대 유럽에서도 만들어 먹었다.

 

발효 음식은 만드는 과정이 가장 복잡한 음식이다. 단순하게 불에 익히거나 양념장을 넣어 버무리는 음식과 달리 세균을 이용한 발효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발효 음식들은 냄새가 독특해서 처음 입에 대기가 쉽지 않지만, 입맛을 들이면 중독성이 강해 그 맛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기도 한다.

한국인들은 발효 음식 중에서 김치나 된장, 고추장 등을 즐겨 먹는데, 주로 기름에 튀기는 방식의 중국 요리나 깔끔한 회 위주의 일본 요리와는 달리 서양인들이 선뜻 먹기가 어렵다.

 

특히 새우젓이나 창난젓 같은 젓갈류라면 질색을 한다. 따라서 아무리 한국에서 오래 살고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서양인이라도 젓갈의 짭짤한 맛과 젓갈에서 풍기는 비릿한 냄새 때문에 손을 대지 않는다.

 

그런데 놀랍게도 로마인들은 이런 젓갈 음식을 무척 즐겼다고... 그것은 바로 생선 내장을 발효시켜 만든 가룸(Garum)이다.

 

지금의 시리아에서 살던 페니키아인들도 가룸을 먹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페니키아인들의 식민지 중 하나였던 포르투갈의 고대 유적지에서 발효된 고등어를 담아두었던 돌 통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역사학자들은 지중해를 누비며 장기간 장사를 하던 페니키아 선원들이 배에서 먹으려고 만들었으리라 추측하고 있다.


페니키아인들만큼 정열적인 항해사였던 그리스인들도 생선 내장을 발효시켜 만든 소스를 가로스(Garos)라고 부르며 음식에 쳐 먹었는데, 가룸이라는 말도 가로스에서 유래된 것...


로마인들이 가룸을 먹은 것은, 기원전 5세기 무렵으로 보이는데, 이후 공화정과 제국 시대를 거치면서 더 널리 퍼져 보편화된다. 제국 시대에는 스페인 동부에서 만들어진 가룸이 최고의 상품으로 인정받았다.


가룸은 우리 액젓과 비슷한데, 항아리에 멸치의 일종인 안초비를 넣고 거기에 소금을 뿌린 후 두 달 정도 발효시켜서 만들었다.


그런데 가룸이라고 해서 모두 안초비로 만드는 것은 아니었다. 안초비로 만든 가룸을 리쿠아멘 가룸이라고 해서 최고 등급으로 쳤고, 고등어 피나 다랑어로 만든 가룸은 무리아라고 부르고 2등급이었다.

 

또 잡힌 지 오래되었거나 폐사한 생산의 창자로 만든 것이 가장 품질이 떨어지는 3등급 취급을 받았다.


가룸은 로마 제국의 발전과 더불어 조리법도 다양해졌는데, 로마의 정치가 플리니우스는 본래의 가룸에 꿀이나 포도주, 식초를 넣어서 먹는 방법이 개발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연회 때 어떤 종류의 가룸을 쳐서 먹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신분이 높은지 낮은 지도 평가되었다고 한다. 부유층은 포도주나 꿀을 넣어 만든 가룸을 먹었고 가난한 사람들은 아무것도 넣지 않은 가룸을 먹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