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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대머리, 왜 이병철 회장은 77년 동안 차 안에서 이 판소리를 들었을까?

화별마 2023. 8. 10. 15:18

판소리 쑥대머리 이미지

쑥대머리, 왜 이병철 회장은 77년 동안 차 안에서 이 판소리를 들었을까?


삼성이 세계적 기업이라는 것은 모두 알고 있지만, 창업주 이병철 회장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다삼성은 한국 현대사에서 성공적인 역할을 해냈는데, 이 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시련을 이병철 회장은 슬기롭게 헤쳐나갔고 그 과정에서 그에게 위안을 준 것이 국악이었다.


이병철 회장은 한일합병이 발표되던 해에 경남 의령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부유한 집안 덕분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지만, 건강이 안 좋아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다.


그는 짧은 유학이었지만 금융공황으로 일본 경제가 휘청거리는 것을 경험했고, 봉건제도를 철폐하고 경제 발전을 이룬 일본의 과도기를 직접 체험한다.


그래서 그는 집안의 노비 30여 명을 해방시켜 줄 것을 선친에게 건의, 노비들에게 얼마의 돈과 양식을 주며 모두 풀어주었다.

하지만 주변으로부터 가산 탕진이라는 비난을 들었던 그는 이후 도박하며 낭인 생활을 하다가 26살 때 부친으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아 첫 사업을 한다.


그가 마산에서 한 사업은 일본인이 독점하고 있던 정미 사업... 그러나 이 사업은 1년 만에 자본금의 3분의 1을 잠식할 정도로 실패했지만, 사업 방법을 바꾸면서 흑자로 전환한다.


이런 성공을 토대로 운송수단의 중요성을 깨달은 그는 자동차 회사를 인수한다, 당시 자동차 한 대 값이 비행기 한 대 값과 맞먹을 정도...


그렇게 돈과 시간의 여유가 생긴 이병철 회장은 식민지 시대에 일본 기업가에게 무시당하는 일이 많자 지배인에게 경영을 맡기고 요정에 드나들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 요정에는 국악과 무용에 뛰어난 인물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이병철 회장에게 들려준 우리 국악은 그에게 유일한 위안이 되었고 당시의 국악을 접한 경험은 훗날 국악의 발전에 기여하게 된다.

그 후, 이병철 회장은 36만 톤의 비료를 생산하는 세계 최대의 비료공장을 건설하는데, 몇몇 정치인의 방해로 그 공장을 국가에 헌납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병철 회장은 공장 준공식을 마치자 건립에 도움을 준 재계 인사들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서 호텔에서 파티를 열고 국악원에서 가야금 연주자와 명창 등 30여 명에게 특별 출연을 부탁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명창 박귀희 여사는 분위기를 부드럽게 바꾸어 판소리를 들려주었고 이때 그 자리에 참석한 거물 인사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이병철 회장은 그의 자서전 호암자전에서 국악을 들으며 혼자 지내는 것을 즐거움의 하나로 꼽았다.

언젠가 가곡 비목의 작사가 한명희가 이병철 회장을 귀명창으로 소개하며 몇 가지 일화를 알려주었는데, 명창들이 작고하기 전에 소리를 녹음하는 프로젝트에도 자금을 보태주었고 강진에서 명창 임방울이 부른 안 좋은 음질의 낮은 영역대 쑥대머리 음반을 얻어 자신의 벤츠 차 안에서 77년 동안이나 이 소리를 들었다고...


이 판소리는 춘향가의 옥중가 중 한 대목으로 수청을 거부한 채 쑥대머리로 감옥에 갇혀 있던 춘향이가 이도령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노래다.

 

왜 이병철 회장은 77년 동안 차 안에서 잡음이 심한 쑥대머리를 들었을까? 분명 20살 전후에 자리 잡은 우리 국악에 관한 어떤 추억이 있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삼성 같은 글로벌기업은 상식을 뛰어넘는 창업자의 결단과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 속에서 성장했다고 할 수 있다. 이병철 회장 역시 자신의 차 안에서 쑥대머리를 반복적으로 들으며 사업을 일으켰던 힘든 시절을 떠올렸을 것이고,

 

또 자신이 사업을 일구는 과정에서 밀려오던 두려움과 고독 그리고 좌절을 한밤의 집무실과 차 안에서 우리 국악을 들으며 달랬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