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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역사, 조세 저항의 역사다.

화별마 2023. 9. 15. 12:42

민주주의 이미지

민주주의의 역사, 조세 저항의 역사다.

 

1789105, 수천 명이나 되는 파리의 생선 장수 아줌마들이 베르사유궁전을 향해 행진한다.

 

억척스럽고 힘까지 좋은 아줌마들이 생선 다듬는 칼을 들고 20나 행진한 이유는 왕비가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된다는 말을 했다는 루머가 파리 시내에 퍼지자 소위 꼭지가 돌아버렸기 때문...

 

베르사유궁전을 둘러싼 이들은 여섯 명의 대표를 뽑아 루이 16세에게 면담을 요구하고 접견실로 왕이 들어오는 순간 이들 중 한 명이 충격과 감동으로 기절한다. 말로만 듣던 왕을 처음 보았는데, 루이 16세의 풍채가 워낙 좋았기 때문이었다.

 

아줌마들은 국민회의가 결의한 봉건제 폐지와 인권선언을 인정하지 않고 버티던 루이 16세의 파리 귀환을 요구해서 결국, 파리로 돌아가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문제는 무려 72년 집권 기간 중 절반을 전쟁터에서 보낸 태양왕 루이 14세로부터 출발하는데, 증손자인 루이 15세에게 원금만 20억 리브르라는 엄청난 부채를 남기고 죽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무능하면서 취미생활을 포기하지 않았던 루이 15세는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에 끼어들어 또 빚을 늘려 루이 16세에 이르면 정부 수입의 대부분이 이자 지급에 들어간다.

 

루이 16세 역시 1763년 북아메리카에서 벌어진 프렌치-인디언 전쟁에 20억 리브르를 쏟아부었는데, 이 돈은 3년 국가 예산에 해당하는 거액이자 700만 명에게 집과 먹을 것을 나눠줄 수 있는 돈으로 당시 프랑스 국민 2,500만 명 중 4분의 1 이상을 구제할 수 있었다.

 

그래서 세금을 더 걷겠다고 삼부회(성직자, 귀족, 평민)를 소집했지만, 사태가 이상하게 흘러가 혁명으로 번진 끝에 본인의 목이 날아갔다.

 

인간은 빼앗기는 일에 대단히 예민하다. 그래서 아버지를 죽인 원수는 용서해도 내 돈을 빼앗아 간 놈은 절대로 용서하지 못한다.

 

그런데 세금은 피할 수 없는 것... 그리고 일단 안 내고 버티는 것은 피지배계급의 본능인데, 세금을 안 내려고 만들어진 것이 민주주의... 그래서 민주주의의 역사는 조세 저항의 역사와 일치한다.

 

사실 루이 16세가 세금을 걷으려던 대상은 평민이 아니라 면세 기득권인 귀족과 성직자였다. 그래서 왕은 국내에 연고가 전혀 없는 스위스 은행가 네케르를 고용한다기득권이 반발하자 네케르는 세금 도둑놈들이라며 국가의 세입과 세출을 시민들에게 공개한다.

 

그런데 국가 세입 26,000만 리브르 중 왕가로 들어가는 돈이 2,500만 리브르나 된다는 사실에 평균 연봉 100 리브르 평민들은 충격받는다.

 

의도와 달리 오히려 왕이 공격 대상이 되었고 화가 난 루이 16세는 네케르를 해임하지만 이미 파리 시민들은 격분했고, 폭동으로 바스티유 궁전이 함락되며 피의 광풍이 몰아쳤다.

 

한편 영국 헨리 2세의 4형제 중 막내 존 왕은 세금과 관련해서 역사에 영원히 이름을 남긴 왕으로 그의 별명은 실지(失地) 왕이다.

 

그는 백년전쟁 동안 영국이 프랑스에서 피 흘려 확보한 땅을 모두 잃었다. 프랑스와 싸우고, 국내 귀족들과 싸우고, 교황과 싸운 끝에 혼자가 된 존 왕은 마지막으로 오스만제국의 술탄에게까지 도움의 손을 내민다.

 

자기를 도와주면 개종하겠다고 제의하자 오스만 술탄은 교지를 들고 온 사절에게 물었다. ‘너의 군주는 어떤 사람인가?’ 그러자 사절은 양심적으로 대답했다. ‘우리 왕은 절대로 신뢰할 수 없는 분입니다.’ 이 대답이 없었다면 그리스도 왕국에서 자발적으로 이슬람으로 개종한 왕이 탄생할 뻔했다.

 

하지만 존 왕이 세금을 걷어 또 전쟁을 하려고 하자 견디다 못한 귀족들이 들고일어났고 기댈 곳 없던 존은 반란군이 마련한 협상 테이블에 앉는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대헌장(마그나 카르타)으로 핵심은 왕의 명령만으로 세금을 거둘 수 없다고 한 것... 결론은 세금을 잘 걷어야 한다. 오래 버틴 나라의 공통점은 세금 걷는 방법이 탁월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