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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식, 어떻게 궁녀들은 은밀한 성애를 즐겼을까?

화별마 2023. 12. 1. 12:33

궁녀의 동성애 이미지

대식, 어떻게 궁녀들은 은밀한 성애를 즐겼을까?

 

조선시대 궁녀는 왕만 취할 수 있는 여인... 따라서 임금 이외에 어떤 사내도 다가갈 수 없었다이렇게 궁궐에는 왕바라기꽃이나 다름없는 궁녀가 수백 명이나 있었는데, 왕이 눈길 주기만 기다리다 피어나지도 못하고 시들어 갔다.

 

궁녀의 입궁 시기는 이른 편으로 대개 네댓 살의 나이로 궁궐에 들어가서 교육을 받고, 입궁한 지 15년이 되면 관례를 치르고 정식 궁녀가 된다.

 

이때 그들은 신랑 없는 혼례를 치르는데, 물론 그들의 신랑은 임금으로 허울뿐인 혼례식에 왕은 참석하지 않았다.

 

이런 궁녀들의 한 줄기 희망은 바로 왕의 눈에 들어 승은을 입는 것... 임금과 동침해서 아이를 잉태하면 후궁 첩지를 받고 진정한 왕의 여자가 될 수 있었다.

 

왕의 여자가 되는 것이 모든 궁녀의 숙원이었지만, 이를 실현한 경우는 극히 일부에 불과했고 대부분의 궁녀는 남녀 관계의 즐거움을 누리지도 못한 채 생활했다.

 

그중에는 잔혹한 궁녀의 숙명에 반기를 들고 동성애를 즐기기도 했는데, 그 사실이 발각되면 죽임을 당하거나 100대에 가까운 곤장을 맞는 가혹한 형벌이 내려졌다.

 

하지만 그녀들이 왕이 아닌 누군가에게 연정을 드러낸 것은 죽음을 불사하고 본능을 따르려는 근원적인 몸부림은 아니었을까?

 

궁녀들의 동성애는 암암리에 성행했는데, 삼국시대부터 전해 내려올 정도로 역사가 오래되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영조 3(1727) 718일에 조현명이 올린 상소를 보면 , 통탄합니다. 예전부터 궁인들이 친족이라는 이유로 여염의 어린아이를 궁중에 재우고 대식(對食)을 핑계 삼아 천한 비구니나 과부와 안팎에서 통정합니다.

 

이는 모두 요사스러운 자로부터 생겨나고 간사한 자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청컨대, 궁 출입을 준엄하게 하여 그들의 왕래를 끊으소서.’라는 내용이 들어있다.

 

원래 대식은 궁녀들이 가족이나 친지 여성을 궁궐 안으로 불러들여 같이 밥을 먹도록 해주는 제도로 별도로 휴가를 주지 않는 대신 가끔 가족이나 지인을 처소로 불러들이게 한 것이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동성애를 즐기는 경우가 많아지자 대식은 궁녀들의 동성애를 의미하는 용어가 되었다보통 상궁이 되면 방자와 비자를 거느리며 단독 생활을 하는데, 이런 생활은 대식하기에 좋은 조건이 되었다

 

따라서 조현명 상소의 대식을 핑계 삼아 천한 비구니나 과부와 안팎에서 통정한다라는 구절은 동성애를 두고 한 말이다.

 

세종 때에도 대식 사건이 여러 건 발각되어 관련된 사람들이 장형의 벌을 받았지만, 대식은 근절되지 않고 영조 때까지 이어진 것이다.

 

당시 대식을 즐기는 여인들을 맷돌 부부라고 불렀는데, 여인들이 성기를 맞대는 행위를 빗대어 표현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