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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모(茶母), 조선 시대 성리학적 이념이 잘 반영된 제도.

화별마 2023. 8. 8. 10:43

다모 이미지

다모(茶母), 조선 시대 성리학적 이념이 잘 반영된 제도.

 

조선 시대의 다모(茶母)는 식모(食母)나 침모(針母)와 더불어 관가나 사대부 집의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던 천민이다그리고 사헌부 관원들은 특별한 일이 없는 날이면 다시청(茶時廳)에 모여 차를 마시곤 했는데, 이를 위해 관사에는 궁궐의 무수리처럼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다모(茶母)가 필요했다.

 

그런데 그런 본래 역할에서 남성이 수사하기 어려운 양반 부녀자들의 사건에서부터 중요한 역모 사건까지 다루는 여성 범죄 수사관의 역할까지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다모에 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도 단 몇 줄만 등장한다. 다모는 조선 초기 왕족을 치료하는 의녀에서 출발했는데, 한 달에 한 번 의술에 관한 시험을 치르는 의녀가 3번 낙제하면 관비로 전락해서 다모가 되었다이는 마치 장악원 기생이 재주가 없어서 함경도 변방의 군인들을 위한 하급 기생으로 보내지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그러다가 부녀자들에 대한 범죄 수사에 가끔씩 차출되면서 중종 이후 범죄 수사에만 전념하는 여자 수사관으로 활약한다즉 남자들이 상대하기 어려운 사대부 여성들에 대한 수사와 수색, 부녀자 사체확인, 호화 혼수 등 미풍양속 저해 사범 그리고 과부 보쌈 단속 등의 사건을 담당하게 된 것...

 

원래 여성 수사관의 역할은 의녀에게 부여된 임무였으나 의녀들이 때때로 다모로 좌천되어 일이 모호하게 섞이면서 다모에게 수사관의 역할이 부여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조선 시대 다모에 관한 기록이 많지 않아 여성 수사관으로서 활약을 자세히 알기는 어렵다. 또 다모는 여러 관청에 소속되어 있었다정조가 설치한 특수부대 장용영에는 다모 2명이 정식 인원으로 있었고 포도청에는 다모들이 거처하는 다모간(茶母間)이 있었다. 그리고 형조나 의금부, 사헌부의 감찰에도 다모가 있었다.

 

비록 다모의 신분은 관비였으나 글을 읽을 수 있고 일 처리에 밝은 똑똑한 여자들이었을 것으로 추측되며 선발 기준은 키가 5척이 되어야 하고 막걸리 세 사발을 단숨에 마셔야 하며 쌀 다섯 말을 들 정도로 기운이 센 여성을 기용했다다모는 주로 역적모의를 하는 집에 많이 파견되었다. 치마 속에는 2척쯤 되는 쇠도리깨와 포승을 차고 다녔다고...

 

조선 시대 여자 형사로서 다모가 필요했던 근본적 이유는 조선 시대 성리학은 예의범절과 형식과 절차를 중시하는 이념이었고 그에 따라 내외법이라는 엄격한 법제가 시행되었기 때문이다.

 

내외법은 여자와 남자가 직접 접촉하는 것을 예의에 벗어나는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었고 그래서 여자 죄인은 여자가 다루어야 했기에 의녀나 다모가 필요했다. 즉 다모는 조선 시대 성리학적 이념이 잘 반영된 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