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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키신저, 냉전의 종결자라고 부른 이유는?

화별마 2023. 12. 7. 12:05

헨리 키신저 사진

헨리 키신저, 냉전의 종결자라고 부른 이유는?

 

냉전의 종결자로 불리던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20231129일 미국 코네티컷주 켄트의 자택에서 향년 10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미국의 국제정치학자이자 외교관, 행정가로 도덕성에 구애받지 않는 정치 현실주의 정책으로 전 세계적으로 큰 비난과 호평을 동시에 받았던 인물...

 

그는 1923년 독일 바이에른주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나치 정권의 탄압을 피해 193815살 때 미국으로 이민, 뉴욕시립대 재학 중 1943년 징집되어 유럽 전장에 투입된다.

 

유창한 독일어 능력 덕분에 보병에서 정보병으로 병과를 바꾼 키신저는 점령지역 행정 책임자까지 맡아가며 현실주의적 국제정치의 진면목을 목격한다.

 

군에서 전역을 한 후 하버드대학에 입학한 그는 미국의 역대 대통령 6명을 보좌했던 역사학자 이자 국제정치학자 윌리엄 얜델 엘리엇 교수의 지도 아래 1954년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는다.

 

하버드대에서 다양한 경로로 외교정책 자문을 하던 그는 19691월 리처드 닉슨 행정부의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처음 공직 생활을 시작한다.

 

4년 후 그는 국무장관을 겸직하면서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스캔들로 자진 사임한 뒤에도 자리를 지키면서 제럴드 포드 대통령을 보좌한다.

 

1970년대는 키신저의 시대... 그는 소련과 데탕트(긴장 완화)를 시도하는 한편, 소련을 고립시키기 위해 미국과 중국 수교의 물꼬를 터서 21세기 국제정치의 뼈대를 만든다.

 

또 베트남전 종전 협상을 주도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3년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한 그는 선거를 통해 집권한 첫 사회주의자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 정부를 무너뜨린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쿠데타를 배후 조종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말을 인용 키신저가 만들어 놓은 세상을 고치느라 임기 내내 분주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의 납치 사건 때 헨리 키신저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것을 계기로 그와 개인적 친분을 가지고 있었다.

 

키신저는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예정된 일이었다며 축하했는데, 당시 국내 언론은 이러한 단편적인 에피소드를 토대로 마치 키신저가 '평화의 전도사'인 것처럼 소개했다.

키신저는 결코 선의의 평화주의자가 아니었고 자국의 이익이라면 타국 정치에 대한 개입이나 독재에 대한 옹호도 서슴지 않은 현실주의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