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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브해의 해적, 이들의 신분은 공무원이었다.

화별마 2023. 8. 18. 10:42

해적 이미지

카리브해의 해적, 이들의 신분은 공무원이었다.

 

해적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은 2011년 아덴만 여명 작전으로 유명해진 소말리아 해적으로 이들이 우리나라 선원들을 납치하자 청해부대가 소말리아 인근 아덴만 해상에서 구출한 사건이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이나 일본 만화 원피스같이 해적을 소재로 한 영화와 만화가 제법 많다해적이 존재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근대 역사에서 약탈 행위를 어느 정도 허용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해적이 그렇지 않았지만, 카리브해의 해적들은 나라의 정식허가를 받아 활동했고 모집 광고를 보고 자발적으로 해적이 되었다. 오늘날로 말하면 나라에서 고용한 계약 공무원인 셈...

 

해적이 언제부터 등장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고대 그리스인이나 트로이인들이 해적이었다는 주장도 있고 신라 해적 신라구, 일본 해적 왜구, 유럽의 바이킹 등이 대표적 해적이다.

 

해적이 활동을 가장 활발하게 했던 시기는 17~18세기... 당시 가장 유명했던 해적은 카리브해에서 활동했던 캐리비안 해적이다.

 

이들 중에는 공식적으로 관직을 받고 활동한 사람들도 있었다. 해적이 되고 싶은 사람들은 유럽 각국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고 해적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그 허가를 증명하는 것이 바로 사략면장(Letter Of Marque, 私掠免狀)’으로 일종의 사업자등록증이다.

 

이 사략면장을 받고 활동하는 배를 사략선이라고 불렀는데, 중세에 외국 군함이나 바이킹의 공격에 대해 민간 함선이 무장해서 스스로 지킬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

 

그러다가 대항해 시대가 도래하자 해적들의 활동을 법적으로 보장해주는 시스템으로 변질, 국가가 오히려 해적 활동을 승인해준 것이다. 사실, 이 제도는 다른 나라의 식민지에서 생산된 귀한 물건을 자국으로 가져올 수 있어서 유럽 국가에게는 희소식이었다.

 

이런 배경은 돈... 17~18세기 유럽 국가들이 진출했던 서인도제도와 동남아시아 등에서 금과 후추 등 각종 귀금속과 향신료를 실은 배가 유럽으로 향했다.

 

이를 노려 국가나 귀족, 상인들이 사략선과 계약을 맺고 중간에서 배를 약탈했다또 정식으로 계약을 맺은 해적들은 약탈한 물건들을 귀족들에게 뇌물로 바치고 국가의 재정 수입에 도움을 주었다.

 

당시 해적의 대표적 인물이 영국의 해군 제독 프란시스 드레이크였다. 그는 스페인 무적함대를 이긴 것으로 유명한데, 스페인과 포르투갈로 향하는 배에서 약탈한 재물을 영국 왕실에 바쳤다.

 

드레이크 덕분에 영국 왕실은 막대한 재정 수입을 얻게 되어 엘리자베스 1세는 그를 해군 제독에 임명했다.

 

식민지 경영의 일환으로 계약에 의한 공식 약탈 행위였던 해적 산업... 유럽 국가들은 이런 약탈 경제를 토대로 19~20세기 제국주의 시대로 전환, 엄청난 희생을 치루었던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