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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역관은 어떻게 양성했을까?

화별마 2023. 9. 26. 15:20

조선 시대 역관 이미지

조선 시대 역관은 어떻게 양성했을까?

 

조선 시대에도 체계적인 외국어 학습이 이루어졌다. 과거시험 중 기술관을 뽑는 잡과에 역과를 두어 외국어를 구사하는 통역관을 선발했던 것...

 

또 당시에도 외국어 학습서가 있었는데, 중국어 교본인 노걸대박통사를 비롯해서 일본어 학습서인 첩해신어등이 그것이다.

 

그런가 하면 외국어 전문 교육기관인 사역원도 있었다. ‘통문관지라는 책을 보면 유명했던 역대 역관들의 활약상이 담겨 있다.

 

조선 시대 역관은 외국어 통역을 전담하는 관리로 요즘으로 치면 국가 외교관이나 공식 통역사다.

 

조선 시대에는 외국어 전문 교육기관인 사역원(司譯院)을 두고 이곳에서 집중적으로 역관을 양성했는데, 이 기관은 조선 시대 내내 존속하면서 사대교린이라는 조선의 기본 외교 방침에 적합한 인재를 양성했다.

 

사역원에서는 회화, 강서(講書), 사자(寫字), 번역 등의 분야로 구분, 체계적인 외국어 학습을 했으며 여기서 양성된 역관들은 외교의 일선에서 그리고 국제무역에도 참여하면서 시대적 변화의 주역이 되었다.

 

당시 사역원에서는 4대 외국어인 중국어, 몽골어, 만주어, 일본어를 가르쳤는데, 한학청, 몽학청, 청학청, 왜학청이라는 관청에서 각각 전담했다.

 

한편 우어청(偶語廳)이라 부르는, 하루종일 외국어로만 대화해야 하는 회화 교실도 운영했다당시 제1외국어는 당연히 중국어였고 사역원에서도 한학청의 규모가 가장 컸다고...

 

그렇다면 조선 시대 역관은 어떻게 양성을 했고 어떤 신분이었을까? 조선 시대 역관은 신분상 중인에 속했다.

 

양반 중심의 사회에서 역관, 율관, 의관, 산원과 같은 기술직은 천시했고 이들은 양반과 상민의 중간 신분인 중인층이었다.

 

이런 중인 신분은 세습화되어 대개 역관은 한 가문에서 연이어 배출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밀양 변 씨, 천녕 현 씨, 우봉 김 씨 등이 대표적 역관 가문이었다.

 

역관은 추천과 심사를 거쳐 적격자로 판정받으면 사역원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외국어 학습을 했다그러나 사역원에 들어갔다고 해서 바로 역관이 되는 것은 아니었고 엄격한 수련 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역원에서는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하루 종일 공부를 하고 매달 2일과 26일에 시험을 쳤는데, 3개월에 한 번씩 지금의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에 해당하는 원시(院試)를 쳤다.

 

그런 수련 과정을 거친 후에 잡과에 응시해야 했다. 의과, 역과, 율과 등으로 구성된 잡과는 문과처럼 3년마다 한 번씩 열렸는데, 역관은 그 중 역과에 응시하여 초시와 복시에 모두 통과해야 역관이 될 수 있었다.

 

역관이 조선 시대의 일선 외교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이와 같은 탄탄한 교육 과정과 외국어 시험제도가 바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