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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온달과 평강공주의 결혼, 그 배경은?

화별마 2023. 9. 27. 11:30

온달 장군과 평강 공주 이미지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의 결혼, 그 배경은?

 

삼국사기 열전 온달 조를 보면 고구려 온달과 평강공주의 러브스토리가 나오는데, 온달은 평원왕의 사위이자 대형이라는 벼슬까지 받는다.

 

그리고 평원 왕이 죽고 영양왕이 왕위에 오르자 신라에 빼앗긴 한강 이북 땅을 찾겠다며 출정을 자원, 신라군과 아차산성에서 전투 중 전사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계급사회였던 당시, 바보와 공주의 결혼이 과연 가능했을까? 하는 호기심과 함께 정말 그랬다면 그 배경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이야기처럼 온달이 정말 동냥을 해서 어머니를 봉양할 만큼 가난한 바보 사내였다면 그는 결코, 공주와 결혼할 수 없었다.

 

또 온달이 명문 귀족 출신이었다면 그 결혼은 흔한 이야기이므로 기록으로 남길 만큼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이런 일이 왜 고구려에서 일어났을까? 그리고 이 러브스토리와 결혼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당시 고구려는 북쪽으로는 중국 대륙을 평정한 수나라와 경계를 이루고 남쪽은 화랑도를 키워 한강 유역까지 영토를 확장한 신라와 국경을 마주하며 크고 작은 영토 분쟁이 치열했던 시기...

 

거기에 왕위계승 문제로 귀족들 간의 다툼이 일어 심한 경우 2,000여 명이 죽을 만큼 고구려의 정국은 불안한 상태였다.

 

하지만 전쟁과 함께 다른 나라와의 교역이 활발해짐에 따라 평민 중에서 상권을 장악, 경제적으로 부유한 자가 탄생했다.

 

따라서 이들은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부를 바탕으로 사병을 훈련시킨 후 전투가 벌어지면 전쟁터로 달려가 공을 세운 뒤 벼슬을 얻어 출세했을 것이다.

 

하지만 대를 이어 정치적 권력을 휘둘러온 귀족에게 그런 계층 사람들은 눈엣가시였고 경계와 의심의 대상이 될 것은 뻔한 이치...

 

거기에 권력의 축을 놓고, 왕권이냐 신권이냐로 왕과 신하 간에 벌어지는 치열한 권력다툼은 우리의 역사 전반에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이다.

 

당시 평원 왕 역시 귀족들의 추대로 왕위에 올랐기에 신권에서 벗어나 자신의 입지와 왕권을 강화할 수 있는 어떤 대안이 절실히 필요했다.

 

이때 왕의 머리에 번쩍하고 떠오른 사람이 부를 축적한 평민 중 전쟁을 통해 권력과 신분 상승을 한 온달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온달은 전투와 지략이 뛰어나 중국 북주와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워 귀족을 견제하고 평원왕이 꿈꾸는 왕권의 강화를 가져다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었다.

 

그러나 중앙에 정치적 배경이 없던 온달이 평원 왕에 의해 귀족이 차지했던 자리에 오를 때마다 귀족들은 그런 온달을 흠집 내려고 그의 약점을 캐서 소문냈을 것이다.

 

또 온달은 평원 왕의 측근이 되자 평강공주와 자연스럽게 만남의 자리를 할 수 있었고 청춘남녀의 만남은 서로에게 연애의 감정이 생기게 해 주었다..

 

평원왕 역시 정치적 입지와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 있었지만, 그가 귀족을 제치고 왕의 사위가 되었을 때 나타나는 거센 반발을 염두에 두고 이를 해결하는데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평원왕은 일찍부터 공주가 어려서부터 울기를 잘해 온 나라에 소문난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내겠다고 말해왔을 것이다.

 

그리고 평강공주가 왕은 절대로 실언을 해서 안 된다며 자신은 기필코 온달에게 시집을 가겠다고 하니 왕인 나로서도 어찌할 수 없다며 두 사람을 결혼시키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