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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쌀국수 포(Pho), 전쟁의 흔적이 담긴 음식.

화별마 2023. 8. 4. 13:07

베트남 쌀국수 포 사진

베트남 쌀국수 포(Pho), 전쟁의 흔적이 담긴 음식.

 

베트남 쌀국수 포(Pho)는 베트남 중에서 남쪽이 아닌 북쪽의 음식이다. 본고장인 호찌민시가 아니라 수도 하노이일 때다.

 

그런데 왜 이 쌀국수가 남부 베트남에서 널리 퍼졌고 베트남 전쟁이 끝나면서 남쪽 난민들이 세계로 퍼뜨린 것일까? (Pho)에는 분단의 상처가 깃들어 있다.

 

북부 하노이 음식이었던 베트남 쌀국수 포(Pho)가 남쪽 호찌민에 퍼진 것은 1954년 베트남이 남북으로 분단이 되었을 때... 북쪽은 공산정부인 월맹이 남쪽은 민주 정부인 월남이 들어섰다.

 

베트남에서도 공산정권을 피해 많은 사람들이 남쪽으로 내려왔고 남쪽에 정착한 북부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 북쪽의 쌀국수 포(Pho)를 남쪽에서 팔았다.

 

사실 1954년 이전까지 남부 베트남 사람들은 남부의 쌀국수인 후티우나 미 그리고 분 같은 쌀국수를 먹었지 북쪽 지방 쌀국수인 포(Pho)는 그다지 먹지 않았다.

 

그러다가 월남한 북부 베트남 사람들이 질박한 북쪽 국수에 소고기와 닭고기를 얹고 갖가지 향신료를 듬뿍 넣어 팔면서 남부 베트남에서도 포(Pho)가 유행했다거리에는 북쪽 쌀국수 포(Pho)를 파는 노점상이 넘쳤고 베트남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먹는 아침 식사가 됐다.

 

그런데 생뚱맞게 프랑스와 중국이 자기네 음식 문화에서 영향을 받아 포(Pho)가 발달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베트남에는 옛날부터 다양한 국수가 발달, 같은 쌀이라도 면의 굵기와 면을 어떻게 뽑느냐에 따라 반과 분이 있었고 밀가루 국수인 미도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먹는 베트남 쌀국수 포(Pho)는 소고기로 육수를 끓이고 국수 위에 잘 저민 소고기 편육과 갖가지 채소를 얹어서 먹는 음식이다이런 포(Pho)가 베트남이 프랑스 식민지였던 시절, 소고기에 채소와 갖가지 향신료를 섞어서 만드는 프랑스 수프 포 토프(Pot au Fe)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베트남은 1858년 프랑스 나폴레옹 3세의 침략을 받아 이듬해인 1884년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때 베트남에 진출한 프랑스 사람들이 하인이었던 베트남 요리사에게 프랑스식으로 쌀국수를 만들라고 요구하면서 프랑스 수프 형태의 쌀국수 포(Pho)가 만들어졌다는 것...

 

그래서 일부 언어학자들은 베트남 쌀국수 포(Pho)의 어원이 프랑스 수프 포 토프(Pot au Fe)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반면 중국은 베트남과 인접한 광동과 광서에서 발달한 소고기 국수 우육면에서 유래되었다고 주장하는데,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많은 중국 화교들이 베트남으로 건너가 당시 수도였던 하노이에 자리를 잡았다고...

 

이때 중국 화교들은 프랑스 사람들이 먹지 않는 소고기 부위를 모아 육수를 끓인 후 쌀국수를 만들어 어깨에 메고 다니며 팔았는데, 중국 광동성 사투리로 고기 국수라는 의미로 ‘육판(肉粉)이라고 외치며 팔았다고 주장한다.

 

이 소고기 쌀국수가 잘 팔리자 베트남 사람들도 따라서 소고기 국수를 만들어 팔면서 이번에는 베트남어로 ‘눅판(Nhuc Phan)’이라고 외치고 팔았다는 것...

 

베트남 쌀국수 포(Pho)가 프랑스 음식의 영향을 받았는지 아니면 중국 남부 음식 문화의 영향이었는지 혹은 순수 베트남 음식 문화의 변형인지는 알 수 없다하지만 분명한 것은 베트남 쌀국수는 전쟁의 흔적이다. 베트남 쌀국수가 세계적으로 퍼진 것은 베트남 전쟁이 계기가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2천 년 이후에 널리 퍼졌지만, 미국과 프랑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1980년에서 90년대에 베트남 쌀국수 포(Pho)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1975년 베트남 패망 과정에서 고국을 탈출한 난민들이 낯선 나라에서 먹고살려고 음식 장사를 시작한 것이 지금 세계적으로 베트남 쌀국수 포(Pho)가 널리 퍼지게 된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