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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 인간의 지혜와 권력의 욕망이 들어 있는 이유는?

화별마 2023. 12. 29.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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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 인간의 지혜와 권력의 욕망이 들어 있는 이유는?

 

올해도 변함없이 32년간 재직했던 직장에서 2024년 벽걸이 달력을 보내왔다. 퇴직한 지 십여 년이 지났는데도 잊지 않고 해마다 달력을 보내주는 그 마음이 늘 고맙다.

 

그리고 새해 달력을 보면 마음이 설레는데, 다가올 미지의 날이 더 나아지길 바라는 희망과 기대 그리고 다짐이 있기 때문이리라.

 

사실 달력은 인간의 역사만큼 오래되었는데, 구석기시대 유물에도 달이 차고 기우는 모습을 보고 새긴 듯한 눈금이 있으며, 동서양은 해와 달 혹은 별의 운행을 관찰, 달력을 만들었다.


달력이라는 용어와 1, 12개월, 월별 명칭은 모두 고대 로마에서 유래했는데, 오늘날 사용하는 달력은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율리우스력이 기원이다.

처음 로마는 달의 운행을 토대로 태음력을 사용했지만, 계절의 순환을 맞추기 위한 윤달의 산정이 복잡, 생활에 많은 불편과 혼란을 겪는다.

 

그래서 공화정 말기 로마의 권력을 잡은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기존의 태음력 대신 고대 이집트의 태양력을 도입, 새 달력을 만든다.

알렉산드리아의 천문학자 소시게네스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이 달력은 1년을 365.25일로 계산하고 365일의 평년과 4년마다 하루가 늘어나는 윤년을 둔다.

 

그리고 새 달력을 도입하면서 카이사르는 자신의 집정관 취임을 맞추기 위해 새해의 시작을 두 달 앞당겨 3월에 시작하던 새해를 1월로 바꾼다.

 

하지만 율리우스력의 1년은 실제 계절의 순환 주기와 약 11분의 오차가 있었는데,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계절과 달력을 다시 일치시키고 향후 오차를 없애기 위해 400으로 나뉘는 해를 제외하고 100으로 나뉘는 해에는 윤년을 두지 않는 새로운 달력을 만든다.

 

달력은 정치에도 이용되었는데, 18세기말 프랑스 혁명기에 자코뱅으로 불린 급진 혁명 세력은 이성(理性)을 시민사회의 새로운 종교로 내세우고 기독교 전통을 타파하기 위해 달력을 바꾼다.

 

그들은 도량형을 10진법으로 통일한 것처럼, 시간과 달력에도 10진법을 도입, 한 시간은 100, 하루는 10시간, 일주일은 10, 한 달은 30일로 만들었고, 1360일 이외 남은 날은 혁명정신을 기리는 기념일로 정했다.

 

그러나 1799년 가을,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나폴레옹은 혁명력을 폐지하고 그레고리우스력으로 다시 돌아간다.


또 러시아는 20세기에도 전통적인 율리우스력을 사용했는데, 1917년 볼셰비키 혁명에 성공한 레닌이 그레고리우스력을 소비에트 공화국의 새 달력으로 채택한다.

 

그러나 레닌이 죽고 독재체제를 수립한 스탈린은 프랑스 혁명력을 연상시키는 새로운 소비에트 달력을 제정하는데, 일주일을 5일로, 한 달은 6주로, 한 해는 72주로 구성했고, 1360일 이외 날들은 기념일로 정해 연중 분산 배치한다.

 

달력 혁명을 시도한 스탈린의 의도는 생산 설비를 중단 없이 가동하고 노동생산성을 향상시켜 소비에트 경제를 발전시키자는 것...

하지만 노동자들은 새 주일 체제에 따라 더 많은 휴일을 누릴 수 있었으나 줄어든 노동시간이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결국 194010년 넘게 사용하던 소비에트 달력을 폐지하고 그레고리우스력을 부활시킨다.

사람의 삶을 우주의 이치에 맞추려는 지혜의 소산이 바로 달력... 하지만 달력의 역사가 알려주듯 달력은 성속(聖俗)의 권력과 결부되었고, 인간의 지혜뿐만 아니라 욕망과 야심까지 담겨 있었다.

 

특히 18세기 프랑스와 20세기 소비에트 러시아에 등장한 혁명력은 새로운 권력이 달력을 바꾸어 시간과 인간을 지배하려고 했다.

 

그러나 혁명력이 사라진 것처럼 인간의 일상적 삶과 동떨어진 추상적인 이념과 정치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달력이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