훠궈, 가난한 막일꾼과 몽골 왕족 접대 요리가 섞인 음식.

훠궈, 가난한 막일꾼과 몽골 왕족 접대 요리가 섞인 음식.

 

중국의 훠궈는 얇게 썬 고기나 해산물, 채소 등을 끓는 국물에 넣어 살짝 익혀 소스에 찍어 먹는 중국 요리로 마카오와 홍콩에서는 다빈로라 부르며 서양에서는 핫 팟(Hot Pot)으로 알려져 있다.

 

빨간 색깔만큼 입안이 얼얼해지는 독특한 맛의 육수와 설렁탕처럼 뽀얗고 담백한 육수가 조화를 이룬 이 음식은 고기와 채소를 비롯, 갖가지 재료를 데쳐 먹는 요리법이 매력적...

 

우리나라에는 약 10여 년 전쯤에 처음 들어왔는데, 지금은 훠궈 전문점이 눈에 띌 정도로 인기 있는 음식이 되었다.

 

사실 훠궈가 중국에서 널리 알려진 것은 오래되지 않았지만, 훠궈의 기원을 5,000년 전 상나라와 주나라로 보는 견해도 있고 한자 솥 정(鼎)자가 물을 끓여 고기를 익히거나 데쳐 먹는 그릇이니 훠궈의 역사가 그 정도로 오래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중국이 개혁 개방을 추진하던 1990년대까지만 해도 지역의 음식이었던 훠궈가 본격적으로 대중화된 것은 중국의 경제 발전이 본궤도에 오른 2000년대...

 

훠궈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전골냄비 가운데 빨간 육수의 홍탕과 뽀얀 육수의 청탕으로 나누어 두 가지 맛을 동시에 맛보도록 한 원앙 훠궈가 가장 대중적이다.

 

흔히 이런 스타일의 훠궈를 충칭 훠궈라고 하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빨간 육수의 홍탕이 충칭 훠궈이고 뽀얀 육수의 청탕은 베이징 훠궈다. 베이징식 청탕과 충칭식 홍탕의 절묘한 조합은 훠궈만의 맛이자 특징이고 청나라 역사와 음식 문화가 만들어낸 극과 극의 조합...

 

훠궈 중 홍탕은 쓰촨 성 충칭의 부둣가에서 일하던 노동자, 특히 배를 밧줄에 묶어 흐르는 양쯔강 물결을 거슬러 배를 끌고 올라가는 선부들이 먹었던 음식이라는 설이 유력한데, 노동자 중에서도 가장 가난했던 막일꾼들의 음식이었다.

 

그러니까 돈이 없어 고기를 못 사 먹은 그들이 내다 버리는 소 창자와 천엽, 오리 내장 등을 펄펄 끓는 육수에 데쳐 먹고 서둘러 일을 하러 갔다.

 

이들에게 부스러기 고기를 판 사람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간쑤 성에서 소를 키우며 살았던 가난한 이슬람 문화권의 회족(回族)... 이렇게 충칭 훠궈 홍탕에는 막일꾼과 가난한 소수민족의 삶이 담긴 음식이다.

 

그러나 베이징 청탕은 홍탕과는 대조적인데, 청나라 궁중의 잔치 요리에서 발달, 민가로 퍼졌기 때문이다. 청탕의 토대가 되는 음식은 베이징의 전통 겨울 음식 ‘솬양러우(涮羊肉)’...

 

원의 대군이 장거리 이동으로 허기와 피로에 지쳐 휴식을 하면서 양을 잡아 요리를 하려는 순간 적군이 기습했다. 그래서 다급하게 고기를 얇게 썰어 육수에 익혀 먹고 나가 싸운 것이 양고기 훠궈인 솬양러우의 유래라고 전한다.

 

솬양러우는 청나라 건륭제가 경로 우대 잔치인 천수연(千叟宴) 잔치를 할 때 선보인 요리로 훠궈 상을 500개 차려놓고 3,000명의 참석자가 동시에 먹었다고...

 

그런데 청나라 황실은 만주족 출신으로 주로 돼지고기를 먹었고 양고기에는 익숙하지 않은 민족... 그렇다면 양고기 훠궈인 솬양러우는 누구를 위한 요리였을까?

 

청나라는 몽골과 티베트 부족 우대 정책을 펼쳤는데, 특히 몽골 부족의 왕공 귀족과 혼인을 통해 형제의 관계를 유지했다. 그리고 해마다 정월 15일이면 황제가 자금성의 보화전으로 사돈 관계인 몽골의 왕족과 귀족을 초대, 잔치를 연 것...

 

이때 몽골 왕족을 대접하기 위해 만든 요리가 바로 솬양러우다. 청나라의 만주족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음식이었지만, 몽골 왕족을 위한 우정의 요리였던 셈...

 

이렇게 훠궈는 가난한 막일꾼과 몽골 왕족을 위한 요리가 섞여 있는 음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