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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의 거리. 어떻게 미국경제의 중심지가 되었을까?

화별마 2023. 8. 12. 17:41

월 스트리트 사진

벽의 거리. 어떻게 미국경제의 중심지가 되었을까?

 

미국 최대의 도시이자 경제 수도는 뉴욕시... 뉴욕시에는 5개의 구가 있는데, 그중에서 맨해튼을 최고로 친다이 맨해튼에 16세기 초부터 유럽인들의 탐사대가 다녀간 후 17세기에 네덜란드인들이 정착하기 시작했는데, 당시 신대륙의 귀중한 생산품인 모피를 거래하기 위해서였다.

 

원래 이 섬에는 인디언의 레나피 족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이 섬을 언덕이 많은 섬이라는 의미로 마나하타(Manna-hata)’라고 불렀다. 이것이 이 섬의 이름이 되었다.

 

1626년 네덜란드인들은 원주민 인디언으로부터 이 섬을 60길더에 사들였다. 60길더는 당시 환율로 환산하면 24달러, 오늘날의 돈으로 따지면 약 1,000달러에 해당한다.

 

맨해튼이 뉴욕뿐만 아니라 미국경제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이곳에 전 세계의 금융 중심지인 월스트리트(벽의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 주변에 뉴욕 증권거래소와 나스닥 등 세계 최고의 증권거래소가 있고, 한때 미국의 중앙은행 역할을 했던 JP모건을 비롯해서 세계적 금융기관의 본부가 몰려 있다.

 

그래서 수십 년 전부터 이 거리의 이름이 세계금융의 중심지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벽의 거리라는 이름은 어디서 유래되었을까?

 

처음 네덜란드인들은 맨해튼의 남쪽 끝에 자리를 잡고 살았다. 그래서 이 지역 이름을 자신들의 수도 이름을 따서 뉴암스테르담이라고 붙였다.

 

그런데 1652년 영국과 네덜란드가 전쟁을 벌이면서 그 여파가 이곳까지 미치게 되었다. 뉴암스테르담 역시 영국의 공격을 걱정해야 했다. 그래서 당시 이 지역의 총책임자였던 피터 스타이베선트는 남쪽은 지형상 절벽이 많아 영국군의 상륙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북쪽에 방어벽을 쌓기로 한다.

 

그는 주민과 흑인 노예들을 동원, 섬의 서쪽과 동쪽을 가로지르는 약 4m 높이의 나무 울타리를 800m 가량 설치했는데, 물론 정착지 북쪽에 거주하는 인디언들의 침략도 대비하자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1664년 영국군은 함대를 끌고 맨해튼 남쪽 끝에 상륙해서 순식간에 이곳을 점령해 버렸고 이 지역 이름도 영국 도시 요크의 이름을 따서 뉴욕으로 바꾸었다.

 

그 후 이 울타리는 수십 년 동안이나 그대로 남아 있다가 1698년 이 울타리의 습지였던 서쪽 끝은 간척되어 그 자리에 트리니티 교회가 세워지면서 철거된다.

 

그리고 이 방어벽이 서 있던 자리는 도로가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군대의 이동도로로 쓰기 위해 건축을 제한했던 울타리 남쪽의 폭 30m가량의 여유 부지를 그대로 활용하면서 벽의 거리월스트리트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

 

그렇다면 월스트리트 근처가 금융 거래의 중심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네덜란드인들은 정착 초기부터 이 목재 방어벽 근처에 모여 주식과 채권 등을 거래했다.

 

그러던 중 1792517, 시장 질서 확립이 필요하다고 느낀 증권 거래 참가자들이 이 거리 옆에 서 있던 큰 나무 아래에서 거래 규칙을 정한 것이 뉴욕증권거래소의 효시가 되었다.

 

이후 월스트리트는 미국경제에 영양을 공급하며 세계 최고 강대국의 원천이 되어주었고,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세계 경제의 성장을 촉진, 공산주의로부터 자본주의를 지켜낸다.

 

하지만 이곳은 미국 대공황의 진원지가 되어 미국경제를 깊은 나락으로 빠뜨리기도 했고 21세기에는 나스닥 폭락과 서브프라임 사태 그리고 리먼 브라더스 사태 등 투기 세력이 유발한 금융위기 등으로 부정적인 아이콘이 되기도 했다.

 

몇 년 전에는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라는 시위가 유행처럼 번졌고 이곳 금융가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탐욕은 많은 영화나 TV 드라마, 소설에서 즐겨 다루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