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사전/음식 잡학

명태, 조선 시대 백성의 사랑을 받은 생선.

화별마 2023. 9. 2. 09:43

명태 사진

명태, 조선 시대 백성의 사랑을 받은 생선.

 

북어, 건 오징어, 간고등어, 굴비의 공통점은? 오래 보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이들을 말리지 않고 유통하면 며칠도 못 가 상한다.

 

이렇게 우리 조상들은 냉장고가 없던 시절 수산물을 오랫동안 보관하기 위해 건조하거나 소금을 뿌리는 염장법, 혹은 겨우내 찬바람 속에 얼려서 숙성시키는 방법을 알아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명태... 명태는 제사와 고사는 물론 전통혼례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수산물이다.

 

전통혼례에 북어가 등장하는 것은 명태가 큰 머리를 갖고 있고 알을 많이 낳아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또 명태의 밝은 눈은 가정을 화목하게 해 주고 어두운 기운을 밝은 빛으로 바꾸어준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또 명태는 항상 큰 눈을 뜨고 있어 귀신을 물리친다고도 생각했다.

 

명태의 이름과 관련해서 흥미로운 내용이 고종 때 문신인 이유원의 임하필기(林下筆記)’에 기록되어 있다.

 

명천(明川)에 태()씨 성을 가진 어부가 물고기를 잡아 도의 수장인 도백(道伯)에게 바쳤는데, 물고기를 맛있게 먹은 도백이 물고기의 이름을 물었지만,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도백은 명천에서 태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잡았다고 생선의 이름을 명태(明太)’라고 붙여주었다는 것...

 

명태는 조선 초기 문헌에는 이름이 전혀 보이지 않지만, 1530년 중종 때 편찬한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함경도 편에 경성과 명천에서 나는 산물 중 무태어(無泰魚)’라는 이름이 보이는데, 이것을 명태로 추정한다.

 

또 명태의 다른 이름 북어는 북쪽 바다에서 잡은 생선이라는 의미인데, 1798년 정조 때 이만영이 엮은 재물보에 명태는 북해에서 나기 때문에 북어라 부른다고 기록되어 있다.

 

명태는 조선 중기 이후 흔하게 잡히는 생선으로 어란도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다.

 

1652년에 기록된 승정원일기를 보면 대구 어란을 진상해야 하는데, 대구 어란 대신 명태 어란을 속여 진상하므로 이를 단속해야 한다는 기록이 보인다.

 

명태는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명태와 북어 외에도 얼린 것은 동태’, 강원도 덕장에서 한겨울에 눈 속에서 얼리고 녹이는 것을 스무 번 이상 반복하여 노랗게 변한 것이 황태’...

 

내장과 아가리를 뺀 반건조 상태의 것은 코다리’, 하얗게 말린 것은 백태’, 검게 말린 것은 흑태’, 딱딱하게 말린 것은 깡태라고 한다.

 

이외에 그물로 잡은 것은 망태’, 낚시로 잡은 것은 조태’, 강원도 연안에서 잡힌 것은 강태’, 함경도 연안에서 잡힌 작은 명태는 왜태라고 불렀다.

 

그런가 하면 더덕처럼 마른 북어를 더덕북어’, 어린 명태를 애기태나 ‘애태’, 또는 노가리라고 불렀다.

 

냉장고가 없던 조선 시대에 생으로 잡은 명태를 1년 내내 먹을 수 있도록 개발된 것이 북어나 황태로 조선 시대만 해도 워낙 흔해서 3 전만 주면 살 수 있는 식재료로 백성의 사랑을 받은 생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