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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노예였던 유대인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부른 노래.

화별마 2023. 7. 20. 10:01

오페라 나부코 사진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노예였던 유대인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부른 노래.

 

오페라 작곡가 베르디 하면, ‘리골레토일 트로바토레그리고 라 트라비아타’ 등 많은 작품이 떠오르지만. ‘나부코역시 그의 대표작에서 빼놓을 수 없다.

 

오페라 나부코는 베르디 최초의 성공작이자 그의 3번째 작품인데, 이 오페라는 당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 밑에 있던 이탈리아 국민들에게 강한 애국심을 불러일으켜 주었다.

 

베르디가 이 오페라를 작곡하기로 결심한 것은 스칼라 극장의 지배인 바르톨로메 메렐리의 집요한 설득 때문... 당시 베르디는 아내가 세상을 떠난 상태였고, 설상가상으로 그의 2번째 오페라 하루만의 임금님이 공연에 실패해서 엄청난 실의에 빠져 있을 때였다.

 

이때 메렐리는 나부코 왕의 행적을 오페라 대본으로 만든 이탈리아 작가 솔레라의 작품을 들고 베르디를 찾아온다.

 

나부코는 구약성서 열왕기 하에 나오는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 2세를 이탈리아식으로 표기한 것인데, 그는 예루살렘을 정복해서 유대인들을 굴복시킨 인물이다.

 

BC 601년 우상을 숭배하는 권력자 느부갓네살 2세는 유다 왕국의 수도 예루살렘을 무차별 공격해서 무너뜨리고 5년 후인 BC 597년 유대인을 포로로 잡아 바빌론에서 노예살이를 시킨다.

 

이어서 BC 586년에는 당시 예루살렘의 왕 시드키야가 예리고에서 붙잡혀 눈먼 봉사가 되었고 유대인들은 또다시 바빌론으로 끌려가거나 흩어졌다. BC 582년 유다의 모든 고대도시가 파괴되었고 그때 노예로 잡혀간 유대인들은 지구라트 건설에 동원되었다고...

 

성경 예레미야’ 5230절을 보면 당시 포로의 수가 3회에 걸쳐 4,600명이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부녀자까지 합하면 45,000명이 훌쩍 넘는다.

 

당시 유다의 총인구는 약 25만 명... 노예로 끌려간 유대인의 수와 비교해보면 많은 유대인이 뿔뿔이 흩어졌다는 의미... 기록에 의하면 포로들의 대부분은 주로 귀족, 군인, 공인(工人) 등이었다고...

 

이렇게 나라를 잃고 땅까지 빼앗긴 채 바빌론에 정착한 유대인 포로들은 종교적 자유는 허용되었지만, 예루살렘 신전에서처럼 종교적 제의(祭儀)는 할 수 없었다.

 

이후 유대인 포로들은, BC 538년 바빌로니아를 정복한 페르시아의 키루스 2(성경에는 고레스 2)의 아무 조건 없는 갑작스런 명령(이를 성경에서는 신의 은총이라고 부른다)으로 귀환이 허용되어 3차에 걸쳐 고향으로 돌아온다.

 

기록에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유대교 경전과 제사 도구들까지 모두 돌려보낸 것으로 나오는데, 유대인의 간절한 기도, 즉 성경에서 말한 예언이 이루어진 셈... 이후 유대 신앙은 완전히 뿌리를 내리게 된다.

 

또 구약성경을 보면 키루스 2세를 기름 부어진 자혹은 기름 부음 받은 이라는 칭호로 기록되어 있다.

 

이런 유대인의 역사를 담은 오페라 나부코’ 3막에서 유프라테스 강변에서 고된 노동을 하는 유대인들이 고향 예루살렘을 그리워하며 함께 부르는 노래가 바로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